혐오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과 교회의 역할

크리스천으로의 정체성

by 아이린

언더우드 학술강좌 주제를 보고 듣고 싶은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어제 이사하고 정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짐 그리고 저녁에 귀가할 엄두가 안 나서 포기했다. 귀가하면 10시가 넘는 비서울 거주인의 슬픔....


갈라 치기는 어느 시대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 더 심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정치색 그리고 종교 성적 지향성의 문제 장애 비장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는 결혼한 이들과 아닌 이들 결혼한 이들은 또 직장여성과 전업 주부 간의 갈등이 등장하더니 아이가 있고 없고 가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말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생각하는가? 3D업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 자체가 직업군에 대한 혐오로 작용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 않으면 저런 일 하게 된다는 막말을 아이에게 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지경가지 도달했다. 직업이 그 사람 자체의 인격 그 사람의 사람됨을 증명하지 않는데 말이다.


미국의 한 보수 논객이 죽은 사건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념 갈등의 극과 극으로 갈릴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았다. 그의 미망인이 썼다는 글도 읽고 그 사람이 말한 모든 내용을 보면서 나는 그가 정말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랑과 긍휼 자비가 그의 시선에선 보이지 않는다. 가시 돋친 말 다른 이를 거침없이 상처 입히는 말을 하면서 자신은 옳은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죽은 것은 정말 안타깝지만 듣고 계시는 분이 있었음을 그의 죽음을 통해 깨닫고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작정하면 고슴도치처럼 사람을 찌르고도 조금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과다. 성경이 혀를 다스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듯 나 역시 혀를 그리고 거칠게 쏟아내는 글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기독교인 작가 고 레이철 헬드 에반스 그녀도 이번에 사망한 그 처럼 아주 극도로 우경화된 기독교 환경에서 자랐지만 오랜 고민과 노력으로 따뜻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 가슴을 울리는 글을 썼었는데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갑작스레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둔 채 세상을 떠났다. 일종의 의료 사고였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이 세상에 계신동 안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세리 그리고 창기등과 교제를 나누셨다. 그는 돌에 맞아 죽을 위기의 여인을 앞에 두고 돌을 든 이들에게 " 죄가 없는 이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시고 그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은 있어도 틀린 사람은 없다. 다르다는 것으로 갈라져 피 터지게 싸우는 행태가 과연 바람직한지. 나는 모르겠다. 예수는 공생애 기간 동안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도 용서와 화합을 말했다. 언더우드 역시 세상을 떠나기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에 온 힘을 쏟았다고 했다. 기독교 교리상에서 가장 기본인 삼위일체와 구속사역만 인정하면 모두 한 형제라 했는데 교회 역시 이런저런 차이를 내세우며 싸우고 정치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잊은 듯 싸운다.


잊지 말자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틀린 건 아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상대를 물어뜯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내 말이 상대의 아픈 곳을 찔러서는 안 된다. 매해 총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은 감수할 만하고 합리적인 거래다? 그 외에도 주 옥 같은 망언들을 보면서 우 리 나라의 기독교인 입네 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목소리 키우는 이들 그리고 나의 생각과 다른 이들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뱉어내는 이들 . 말로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행동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이 안 보이는 이들은 나의 반면교사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나이 먹은 보통 아줌마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나 최소한 당신이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는 소리 듣지 않게 노력하자.

레이철 헬드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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