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
권력에도 서열이 있단다. 이게 왠 조선 시대 발언인가 싶었는데 통치권자의 말이란다.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이고, 따라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단다. 그러니까 ‘국민주권’-‘직접 선출 권력’-‘간접 선출 권력’의 순이라는 것이다. 선출권력이라는 분이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다.
그는 선거에서 국민 절반의 찬성도 얻지 못했다. 타 후보보다 좀 더 많은 표를 얻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그 역시 헌법에 의해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을 뿐이다. 그도 헌법에 의해 주어진 권한을 헌법에 의해 행사해야 하는 임명직일 따름이다. 헌법에는 명시적으로 서열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학 때 헌법과 법률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하여라는 서울대학교 김철수 교수의 책을 읽은 일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거의 모든 내용이 머리에서 사라졌지만 요점은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것으로 말했던 것 같다. 법치주의 국가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대통령은 삼권분립이라고 마냥 삼권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한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그런데 어느 날 대한민국이 사법국가가 되어가고, 사법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정치가 사법에 종속되는 위험한 나라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사법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사법이 정치에 종속되는 나라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이상향이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태가 이 이상향이라고 한다. 한 번이라도 법서를 읽었다면 이런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이 대통령의 말처럼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와 국회의원(제41조 제1항)과 대통령(제67조 제1항)을 선거로 선출한다는 조항 등이 선출 권력 관련 근거 조항이다. 국회의 권한에 대해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보장하고 있고,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제66조 제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제4항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라고 명시한다. 헌법이 권력기관을 소개한 순서도 국회(제3장), 정부(제4장, 대통령은 제1절), 법원(제5장), 헌법재판소(제6장) 순으로 나열한다. 이것이 권력의 서열을 의미한다고 보이는가?
선출 권력 가운데 대통령의 경우 헌법 제78조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 한다”라고 규정해 대통령에게 핵심 권력인 인사권(임명권)을 부여한다. 특히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제104조 제1항),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같은 조 제2항). 다른 권력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11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같은 조 제4항)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헌법에 따라 만든 기관이다. 당연히 사법부의 판결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법부의 권한은 헌법에서 주어진 권한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존중되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건 배당에 끼어들면 어떠냐는 말을 하고 원하는 내용의 판결이 아니면 왜곡된 판결을 한다며 판사에 대한 사이버린치를 감행한다. 사법부에 대한 시선이 왜곡된 건 언제부터일까? 사법부가 완전히 정치권력에게서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어떤 형태든 판결에 끼어들려는 정치권의 입김은 늘 존재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던 법관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무렵에도 삼권 분립의 형식적 기초마저 흔들겠다고 생각한 소위 선출권력은 없었다. 입맛에 맞게 온갖 방법을 사용했을 따름이다. 국가권력에는 역할이 있을 뿐, 서열은 없다 사법 입법 행정은 서열에 의한 나눔이 아니라 하는 일에 따른 나눔이다. 입법과 행정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만, 사법은 헌법에 따라 임명된다. 그 헌법은 국민이 만들었다. 따라서 사법부 역시 헌법적인 권한을 가진다. 이것이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이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다.
대통령을 존중하는 것이 그가 권력의 정점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선거라는 형식으로 완전치는 않고 일부 국민의 의사긴 해도 좀 더 많은 표를 얻었음 때문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되어서다. 국민은 공복을 뽑은 것이지 절대자를 선출한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국민이 모든 일을 일일이 결정할 수 없기에,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국민을 대신하는 일꾼들이 권력에 취해 국민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법부라는 장치를 만들어 ‘견제하고 통제하라’는 것이 현 정부와 여당이 무시하는 헌법정신이다.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헌법학자 대다수가 ‘위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비웃듯이 “그게 무슨 위헌이에요”라는 한마디로 정리를 한다.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는 헌법조항만 따르면 내용이야 어찌 되건 충분하단다. 그런 니 국회결정을 따라야 한단다. 뭔가 엄청난 착각을 하는 대통령과 여당인사들을 보면서 열흘 붉은 꽃은 없고 10년 가는 권세는 없다는 옛말을 생각한다. 그들 때문에 고통받을 국민 그리고 나라가 걱정될 때름이다. 억지로 물길을 바꿔도 물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흐르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부디 잊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