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선물
주민센터까지 새로 발견한 길로 걸어 다녀왔다. 어머니 교통비 지원 카드 도착한 걸 가지고 가 등록하고 달랑거리는 혈압약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애매한 거리여서 차를 타기도 뭐 했다. 다리를 절어도 아예 못 걷는 날 오기 전 부지런히 걸어 다리 근력 키우자는 마음으로 걸었다. 약을 처방받는데 혈압이 올랐다. 의사 선생님에게 큰 변동 없으니 먹던 대로 달라고 했다. 며칠 신경이 곤두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말을 했다. 일 년여 꾸준히 혈압을 아침저녁 기록해 가져간 덕분인지 내 말대로 약을 그대로 주셨다. 다시 또 걸어 귀가하니 만보계가 꽉 차고 넘어갔다.
점심으로 비빔 라면 드리고 잠깐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낮잠을 한 50분 잤나? 아무튼 밖이 시끌 거려 도로 일어나니 고모가 옷을 보냈단다. 하나는 니거 같으니 입어보라나. 아버지 옷을 보내면서 얹어 보낸 듯하다. 내 취향이 아닌 이상한 체크 재킷. 어머니의 성화에 입어보고는 던져버렸다." 내 취향 아냐". 아버지는 신이 나셔서 바지를 입어보고 계신다. 조금 두꺼운 겨울 청바지다. 아버지는 워낙 옷을 좋아하셨다. 옛날 집 공사 할 무렵 일하러 오신 분이 아버지 옷들을 보고 연예계 계시냐 해서 웃고 말았었다.
일단 발병하면서 식욕도 줄고 체중도 줄어 옷의 반이상을 버렸다. 이 버리는 일도 힘들었다. 다른 건 오락가락하는 분이 옷은 기억을 하신다. 옷의 양이 줄어든 것을 귀신 같이 알아차리셨다. 비슷한 디자인들 색들 중 골라서 하나씩만 남기고 버렸고 수선이 안 되는 것들은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없어진 옷을 정확히 묘사한다. 헐.... 키는 안 줄어도 체중은 거진 30킬로 줄어드셨는데 예전 옷이 맞을 리 없잖나.
허수아비에게 옷 입힌 꼴이라 도로 30킬로 찌실 것 아니면 버릴 거라고 나와 동생이 윽박질러 옷에 대한 집착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포기하고 잊은 줄 알았는데, 우리가 윽박질러 버렸다는 식으로 기억한 건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설명했는데 말이다. 고모는 둘 데도 없을 만큼 작은 집 처지를 알 텐데도 옷을 사 보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우리가 옷을 버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시 조용히 몇 벌을 또 버리지 않으면 고모가 사준 옷을 넣어둘 곳이 없다. 50 이 넘으면 추억 때문에 가진 물건 정리하고 옷도 정리하라던데 80이 넘으신 분이 무슨 집착을 그리 하는지. 치매환자가 먹을 것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옷인가 보다.
나도 사계절 옷을 장 하나에 다 넣어두려 노력하고 지금도 옷을 살피며 버릴 게 없나 찾는데, 우리 아버지에겐 남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행복해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면 된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는 옷을 보면서 사라져 가는 기억 속의 화양연화를 생각하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