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태워먹다

쓸만한 물건을 사자

by 아이린

카레가 먹고 싶어 재료를 이것저것 준비해 손질한 것까지는 좋았다. 냄비에 재료를 볶는데 냄비 바닥이 얇다 보니 눌러 붇는다. 약한 불이었는데도 말이다. 지난 추석에 찜 냄비로 쓰려고 저렴한 걸 구하다 난 사단이다. 뭘 쪄먹기도 애매한 크기 그냥 이것저것 해 먹는 막냄비로 쓰자 생각한 지 며칠 지났지? 연기는 풀풀 나고 하는 수 없이 재료를 다 긁어 버리고 냄비를 닦는데 부모님 두 분이 깨셨다. 덜그럭거리는 것 때문에 시끄러워 잘 수가 없다신다. 나도 한 시간 낮잠을 잤는데 당신들은 시간 계산해도 두 시간 이상은 주무셨잖나 며칠 전부터 먹고 싶어 나 혼자 먹으려던 카레를 태운 것 보고는 노발대발하신다. 냄비를 아무리 닦아도 눌어붙은 게 해결되지 않아 버리기로 했다. 쿠팡을 뒤져 조금 더 나은 냄비를 하나 주문했다. 어머니는 당신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냄비만 닦는 게 화가 나셔서 방으로 들어가 당신 딸이지만 정말 봐줄 수 없다고 아버지에게 그러신다.아버지는 무슨 소린지 이해도 못하싩텐데... 아침나절 아픈 손가락 치료받고 약 좀 더 챙기러 서울 병원 다녀오며 지쳤는데 그냥 울컥한다. 나빠진 몸 상태를 누구에게 하소연 한들 소용없잖나. 내가 손가락이 아프더니 움직이지 않는 통에 얼마나 무서웠는데 아직도 가끔 목 아래가 말을 안 듣던 오래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어머니나 누구도 모를 거다.


하소연이나 다름없는 이런 글 누가 읽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에 무언가 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많다. 나도 밑바닥 두꺼운 냄비 사서 잘 쓰고 싶다. 마음이 약해서 휩쓸린 집안의 재난에, 맏이라는 이유로 친구들 만류에도 가진 것 다 턴 결과가 지금의 나다. 의사는 대학병원 갈 것을 권하지만 , 예정된 암수술도 간신히 하는데 다시 어떻게 돈을 마련하나. 나도 힘들다는 것 나도 아프다는 것 그래도 기운내고 있으니 잘했다고 좀 해 줬으면... 나는 다시 눈물을 닦고 부모님 식사를 챙기고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한다. 이번에 새로 구매한 냄비는 태워먹지 말자. 부모님이 별로 좋아도 하지 않는 음식 나 먹겠다고 욕심 낸 게 잘못이다. 3분 카레로 만족해야 했는데... 내 손가락은 병원에 다녀온 후 아프다 비명 지르기를 멈추고 기절했는지 아무 느낌이 없다. 그래도 왼손이어서 다행이야. 오른손이면 예전처럼 밥숟가락도 못 잡았을 텐데.... 재활용 쓰레기 놓는 곳에 다 탄 냄비가 나를 노려본다. 내일 아침 일찍 내다 버리자..... 그리고 이젠 진짜 제대로 물건 사서 쓰자. 돈 없다고 산 싸구려로 만드는 쓰레기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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