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하지 말라
중도층은 있다.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선거인 등록을 하면서 자신의 지지정당을 정하는 제도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극우보 수로 알려진 조갑제 씨가 민주당의 이재명을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처럼 지지할 수 있듯이 좌와 우의 양극은 통한다. 그래서 성경은 좌로도 위로도 치우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여호수아 1: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언 4:27)
AI 조차 다음처럼 중용을 말하고 있다 중용이 이란. 항상(平常, 不易) 떳떳하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이는 유교의 사서 중 하나인 『중용』의 핵심 사상이기도 하다
사람의 성품도 한두 가지 갈래로 정의 내리기 힘든 법이다. 열정적으로 때로는 과 흥분 상태로 일상에서의 여러 가지 과제를 행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말을 별로 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만은 분명한 이들도 존재한다. 과거 마케팅 관련 책을 볼 때, 충성 고객층의 수를 늘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조용히 등을 돌리는 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읽은 일 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진상이라 할 만큼 클레임으로 괴롭히는 이들보다 조용히 발걸음을 끊는 고객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제품을 구매했을 때 관심이 있었고 그 후에 추가 구매 등을 했더라도 그들을 절대 내 영역에 들어온 집토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뭐 그런 거였다. 나만 해도 정치 성향 분류를 하면 중도 보수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사회 현안의 부분부분에서 내 생각은 상당히 좌파적인 면을 보인다.
중도 좌파냐 중도 우파냐 정도의 분류도 있어야 하는데 현재 여야 정당 대표와 정치인들을 보면 이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금번 대장동 항소 포기 결과에 대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잡히는 수치는 뭐로 설명할 건가? 48프로의 국민이 (물론 내게는 조사 전화가 오지 않았지만 나도 여기 들어간다) 대장동 할 소포기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모르겠다 대답한 이들도 23프로가 된다. 48프로의 결과에서 국힘지지율을 빼면 나머지는 누군가? 모르겠다 대답한 이들은 누군가?
모든 사안에 대해 명백하게 내 생각은 여기저기로 정하지 못하는 이들 사안마다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결정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쪽 저쪽에 경우에 따라붙는 카멜레온이라 비난한다고들 하지만 이런 이들은 최소한 목 위에 붙은 걸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계엄을 반대하고 윤석렬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한다. 그렇다고 그가 재임 중 한 모든 일이 악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가 한 계엄이라는 것을 계몽령 운운 이상한 말로 옹호하며 윤 어게 인을 외치는 이들도 혐오한다. 그렇다고 공무원의 핸드폰 검열을 하겠다고 하며 대법원장을 악마화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만을 정의라고 외치며, 도둑질과 사기를 옹호해 그 범죄자를 부자로 만드는 민주당을 옳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이승만이라는 그리고 박정희라는 인간의 과를 누구보다 분명히 알기에 그들을 싫어하지만 그들이 한 일들 중 공은 인정한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교적 좋은 정치인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들이 절대 선 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충성하는 것은 이 땅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세상 시민으로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에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뤄보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아마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그럴 거다. 우리의 판단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기에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 늘 애쓴다. 경우에 따라서 좌로 움직이기도 우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무엇이 옳고 바람직한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에 따름이다.
나는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김문수란 사람을 찍었지만 그 투표는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한 것이었다. 김문수가 얻은 표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도 상당할 거다. 이재명 역시 그가 얻은 표가 모두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표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를 찍은 표에는 최악을 피한 차악으로 그를 선택한 이들의 것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지금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참과 거짓이 싸울 때 어느 편에 설 거냐고 주님 물으신다면 참의 편에 서겠노라 말하겠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당 지도층과 극우 보수가 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딜레마 때문에 고민 중이다. 신앙인은 아니라도 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를 볼 때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고 한다. 선 거에서 전과 유무가 중요한 이유다. 혼자 있을 때 누군가 보지 않을 때의 모습이 그 사람이란다. 그렇지만 한숨만 나오게 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엔 나이 불문하고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