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머니
나는 좀 못생겼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아예 안 닮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내 얼굴에서 부모님을 떠올리지 못한다 할까? 특히 어머니는 미인이었다. 늘 어머니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엄마 닮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하는 말이나 시선을 경험했다. 아버지는 큰 키 덕에 그리고 뚜렷한 얼굴 윤곽 덕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래서 아버지 닮았나 보다 하는 말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동생조차도 괜찮은 까지는 아니어도 두 분 사이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외모다. 아무튼 사람들의 반응 덕에 내가 안 생긴 편이라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데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도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겠는가 성형수술을 잠깐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유전되는 특이체질 탓에 상처를 낼 수 없었다. 이것도 갑상선 종양 수술을 하고 알게 된 것이다. 30년도 넘은 수술 흔적이 목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이 수술 전 잠깐 생각한 쌍꺼풀 수술을 했으면, 대 참사가 벌어졌을 거다. 흠. 그래서 지금까지 외모에 관한 일은 포기하고 살았다. 주워온 뭐 자식만 아니면 된 거지 이런 정도의 감정이었다 나는
나랑 나이차이가 별로 안나는 막내 고모는 심심하면 나를 주워온 온 애라 놀리며 내 눈물 버튼을 자극했다. 안 닮았다는 데서 온 스트레스가 고모의 그 말로 터졌던 것 같다.
서론이 좀 길어졌다. 어느 날 내가 누구를 닮았는지 가르쳐준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증조할머니셨다. 사실 처음 사진을 봤을 때는 나랑 뭐가 닮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시어머니를 썩 좋아하지 않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던 할머니는 내 얼굴은 증조할머니를 틀에 놓고 찍어낸 얼굴이라 하셨다.
내가 시어머니 닮아서 할머니가 더 싫어하셨던 건가?
증조모는 특이한 분이었단다. 내가 한 살도 되기 전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나를 많이 예뻐하셨다고 들었다. 손주며느리를 예뻐했기에 증손주가 태어났을 때 유독 기뻐하시며, 어머니의 건강을 챙기셨다나. 당신의 며느리에겐 보인적 없는 애정이었단다.
그분은 우리 증조부와 재혼을 했다. 증조부는 총각이었다. 말로는 증조모가 하는 국밥집을 드나들다 눈이 맞았대나. 그 당시에 재혼한다는 것이 별로 흔치 않았지 시절이다. 과부가 하는 재혼도 그런데 이혼녀가 총각과 재혼했다. 그것도 딸이 하나 달리고 뱃속에는 전 남편의 자식이 있는데 말이다. 뭔가 매력이 있었을까? 나이 몇 살에 재혼했는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다. 호적에는 증조모에 관한 그리고 증조부에 관한 기록이 돌아가신 시기만 남아 있을 따름이고, 할머니가 건너들은 이야기가 아니면, 증조모에 관한 것은 그냥 묻혔을 거다. 할머니도 어느 날인가 옛날 서럽던 이야기 꺼내다 증조모 이야기를 하신 거고. 이후에 더 물으니 모른다고 말씀 안 하셨고 말이다. 사실 할아버지의 형제들과 할아버지가 너무 안 닮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씨가 달랐던 거다. 이것은 다른 친척 하나에게 증조모가 하신 말씀이란다. 그 친척도 너무 안 닮은 형제들 얼굴이 이상해서 물었단다
증조모의 고향은 황해도라는 정도만 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살아계실 때 더 물어둘 것 싶기도 했는데, 할아버지는 당신의 출생을 별로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 분이었고, 할머니 역시 한번 이야기한 후 입을 다무셔서 알 길은 없다. 할아버지의 손위 형제인 딸은 장성한 후 친부가 사는 동네 근처의 남자와 혼인하러 황해도 딸고로 떠났단다. 분단이 되고 북의 딸을 걱정하던 증조할머니는 6.25 때 피난 온 외손주들을 만났다. 아이들만 내려보낸 딸과 증조모는 다시 만나지 못하셨으니... 증조모는 외손주들을 집에서 챙겼단다. 우리 집은 제대로 벌지 못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식구들 이런 군식구들까지 더 얹혀 더 어려워졌다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그분은 외손주들 혼사를 다 직접 주관하셨단다.
증조할머니가 이혼하신 이유가 궁금했다. 할머니 말씀으론 전남편의 도박병 때문이었단다. 손모가지를 자르면 발로라도 한다는 노름병을 견디지 못하고 결단 내리신 거란다. 남한에 내려올 때 딸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딸아이가 몇 살일 땐지 모르나 일단 걸어서 따라올 나이였겠지? 할아버지가 뱃속에 있는 건 내려와서 알게 되었으나 지울 방법이 없어 낳았다고... 할머니는 싹수 노란 놈 자식이라고 지우려고 온갖 민간요법은 다 했지만 , 할아버지가 살아남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론 낳은 아이를 추운데 내놔 얼어 죽게 하려 했는데, 이 말씀을 우리 할머니에게 하신 이웃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챙겼고 다시 키우도록 타이르셨다했다. 요즘 같은 중절 수단이 있었으면 바로 저지르셨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세상에 없었겠지?
전해 들은 말로는 어려운 형편에도 거지를 보면 밥 챙겨 먹이려고 애쓴 분이었단다. 국밥을 팔 때도 어려운 사람에겐 고기 한 점이라도 올려주려 하셨단다. 문 제는 여유가 없고 끼니 걱정해야 할 상황에서도 그러시는 통에 할머니의 마음고생이 컸다는 거다. 할아버지의 성향을 보면 이북에 있었다는 증조모님 전남편이 짐작된다.
생활력은 하나도 없고 놀기를 즐기고, 할아버지는 노름은 안 하셨다지만 성실한 가장이 아니었다.
남편을 버리고 떠날 용기가 없던 할머니는 눌려서 기죽어 지냈고 버리고 떠날 용기 있던 증조모는 경제적 여유는 없어도 당신하고 싶은 일은 다 하셨다. 누가 더 나았는지는 모르겠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머무르던 곳을 과감하게 떠날 용기는 내게 없다. 외모는 증조모를 닮았는지 모르나, 겁이 많은 건 조모를 닮은 것 같다. 아닌 걸 알면서도 가차 없이 쳐내고 돌아서지 못하는 유약함이 난 싫다. 증조할머니의 외모만 닮은 게 유감이다. 그분 성격을 닮았다면 내 삶의 모습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사진 한 장으로만 본 증조할머니, 맸고 끊음이 분명한 강인한 성격의 그 여성이 궁금하다. 남편을 버리고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 있는 결단력이 놀랍다. 증조모가 서울에 내려온 시기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이었을 텐데, 그 무렵의 여성들이 강했나? 아니면 그 양반만 그랬나. 독특하고 특별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