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자르기 좀 멈춰 주세요

절약도 좋지만

by 아이린

아버지가 갑자기 휴지를 많이 쓰지 말라 신다. 당신도 휴지 한 칸만 쓰는데 어머니랑 나는 너무 많이 쓴단다. 어머니는 두 칸 나는 세 칸을 쓴다. 아버지가 한 칸에 푼 코, 뱉은 가래로 쓰레기통은 늘 더럽다. 나는 절대 안 닦는다. 아버지 쓰레기통 청소는 어머니 몫이다.


원래도 절약정신 투철한 분이긴 했다. 안 쓴다. 어릴 적 - 중학생 때다-외출하려는 나에게 나가서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5000원이나 주셨다. 당시 5000원이면 거금이긴 했다. 신이 나서 받아 들고나가 원래 보려던 영화 보고-미성년자 관람가다- 밥 사 먹고 책도 한 권 사들고 귀가했다. 그런데 저녁에 돌아온 내게 쓰고 남은 것 달라시는 게 아닌가. 물론 다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받으면 보통 용돈 준 것으로 생각하지 않나. 나는 남은 돈을 돌려드리고 한참 구시렁거렸었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이면지 사용하라며 일력을 모아 묶어 연습장을 만들어 주셨다. 문방구 가면 질 좋은 연습장이 있는데, 나는 그 일력을 써야 했다. 조금만 힘주면 그냥 찢어지는 종인데 뭐 하자는 건지, 결국 어머니가 뭐라 해서 나는 연습장을 사서 쓸 수 있었다. 때로는 지난해 달력을 잘라 묶어 노트를 만들고 학교에 가져가라 하셨다. 예쁜 노트 사서 쓰는 애들 많은데, 나는 왜? 이 문제도 어머니가 해결해 주셨다. 어머니도 절약 정신이 투철하신 분이긴 하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넘어섰다.


치매 발병 후에도 달력을 자르는 버릇은 안 사라졌다. 메모지를 만드시는 거다. 그런데 메모지 쓸 일이 얼마냐고. 그 달력 메모지는 남고 또 남아 서랍을 채우고도 넘쳤다. 이사올 때 버렸는데 또 만들고 계신다. 어디다 누가 쓰냔 말이다. 일회용 면도기를 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잘 말려 한번 정도 더 쓰고 버리는 게 아니다. 모으고 또 모아놓은 것이 얼만지.. 녹이 슨 것도 있어서 버렸다. 아버지에게 녹슨 것을 쓰다 죽으려고 그러냐 버럭하고 버렸을 때 아버지는 나랑 한참 말을 안 하셨다. 보니까 일회용 면도기가 또 모여있다. 전기면도기를 비싼 돈 주고 사드려도 일회용 면도기 사용을 고집하신다. 좋다. 그럼 최소한 일회용으로 쓰셔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 가지를 잊어버리신 분이 이 문제는 전혀 안 잊으시고 오히려 더 집착적으로 고집하신다.


교회에서 내년 달력을 받았는데, 이면지 사용이 불가능한 거라 좋아하니 어머니가 친구가 보내주는 달력 다실 거고 그걸 또 자르실 거란다. 한숨 만난다. 절약 좋다. 해야 한다. 그러나 휴지 한 칸만 쓰는 것 달력 이면지 잘라 메모지 만드는 것, 일회용 면도기 쓰다 모아두는 게 알뜰함과 관련 있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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