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거지 빌라거지?
집 살 능력은 없지만 부동산 관련 유튜브를 가끔 본다. 투자를 할만한 돈은 없어서 배수로 늘어나는 26주 적금을 하는 처지고,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를 하고 싶다는 욕심에 달러를 조금씩 사서 모으고 있다. 아 한 가지 더 , 주식투자라고 하긴 뭐 하지만 코카콜라 주식을 조금씩 사고 있다. 총재산이래도 병아리 눈물? 밖에 안된다. 뭔 투자냐 하고 비웃을 사람도 많겠지만 긴 우울의 늪에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한 작 년부터 시작된 변화다.
서론이 긴 이유는 유튜브에서 전문가가 한 이야기 그러니까 강남이어도 빌라는 저렴하고 빌라촌 근처의 아파트는 건설사가 어디든 인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이유는 섞이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일종의 계층의식 때문이란다. 이런 사고방식은 비단 강남이 아니어도 여러 곳에서 드러난단다. 임대 아파트 주민이 자신의 아파트를 지나다니는 것을 거부한다든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게 한다든지 말이다.
품위 증명이라는 네이버 웹툰에서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필사적으로 알리지 않으려다가 그게 드러났을 때, 자신을 학교에서 몰아내려는 학부모 그리고 교사와 대립하는 여주인공 이야기처럼 수저론으로 출생 이후의 계급이 나뉘는 것은 참 그렇다 이젠 그게 초등학교까지 내려가 개근거지 빌라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고? 개근을 한다는 게 성실함의 증명이 되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 아파트에 살면 어느 아파트냐 몇 평이냐 집의 차는 어떤 거를 타냐 빌라에 산다 하면 그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고?
부모님이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좀 편해진다는 것은 안다.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모의 경제적 능력 때문에 움츠러들어야 하나? 부모가 도와주면 다른 사람보다 더 앞으로 나갈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출생과 주어진 수저의 색은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혹시 출생과 주어진 수저색에서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과 다르며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거다.. 위로 올라갈 수단이 없이 살아내야 하는 일상은 고단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자도 하루아침에 망해 빈털터리가 될 수 있고, 대단한 직장에서 억대 연봉을 받아도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선 책상 치우고 떠나야 할 수도 있다. 나는 부모가 자녀에게 내가 번 돈은 너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인식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대학 다닐 무렵 교수님이 자녀를 어느 단계까지 공부시키는 게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다. 그 무렵은 초등학교만 의무 교육이던 시절이었다. 대학이요 고등학교요 또 자녀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만큼이요 뭐 대답은 가지 각색이었다. 결혼을 한다면 어느 정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도 대답은 가지 각색이었다. 교수님은 고등학교 졸업까지 정도라고 하셨다.. 대학과 그 이후는 부모가 지원해 주면 좋겠지만, 그건 의무가 아니라시지 뭔가. 결혼 역시 결혼식 정도만 지원을 해주면 충분하다고 그 이후는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 하셨다. 이건 내 부모의 생각과도 비슷했다. 대학을 국립대학 가면 학비를 지원해 주지만 그 이상은 못한다시던 아버지 덕에 나는 차액을 벌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장학금 아르바이트 등등 운이 좋아 휴학 없이 학교를 마쳤지만, 돈에 관한 공부는 충분히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별로 실용적이지 않은 공부를 했어도 사실 운이 괜찮아 그럭저럭 생활을 꾸리며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나 동생과 얽혀 빈털터리가 된 지금 몸이 아파 취업은 불가능해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얹혀살면서 살림을 하고 , 간간이 번역일이 생기면 해서 푼돈을 번다. 지금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생 다 끝난 거 아니냐 하지만 나는 뭐라도 해보려고 부스러기 돈을 모으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내 부모 역시 그 부분에는 지식이 없는 평범한 분이었다. 퇴직연금 그리고 약간의 저금이 전부인 분들이시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해줄 만큼 했으니 집을 떠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부모님의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발병 아버지의 치매가 아니었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나는 부모님께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배웠다.
개근거지 빌라거지 운운하는 어린아이들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부모는 그리고 출생환경은 선택 못한다. 그러나 그 환경이 우월할 근거도 기죽을 근거도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일찍부터 배워 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을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하고 더디더라도 열심히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무슨 무슨 거지 같은 유치한 혐오 표현이 너무 당연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재 게 붕어로 개천에서 살라고 거기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은 용으로 키우려는 사람들이 국가의 지도층인 한심한 나라에 살지만 스스로를 가재 게 붕어로 정체성 확립하지 말고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려 꿈꾸길 바란다. 출발선이 부모 잘 만났다는 이들과 다를 수 있지만 결승선마저 다른 건 아니다. 이것은 내 조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또래 젊은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