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과 아버지

외식

by 아이린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아버지의 기억에선 많은 조각이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것이 아직 까지 다 파악은 안 되나 현재로선 나하고 관련된 것이 제일 많다. 그다음은 동생인 것 같다. 뭐 그래도 누구세요 하는 지경은 아니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조카들에 대한 것은 아직 파악된 것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당신에게 정서적 비중이 적은 이들이 망각의 대상 아닌가 의심이 된다. 원래부터 아버지는 나와 동생의 생일은 기억 못 하셨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생년월일 기억 못 하시는 거야 원래 그랬지만, 이제는 너와 관련된 소소한 것을 자꾸 잊어버리신다. 내가 해드린 일도 그렇고 나의 개인사도 그렇고.. 내가 잘못한 것은 과거 한 가지도 잊지 않으시던 분인데 그래서 그걸 꺼내 나를 잡도리하시던 분인데 이젠 내가 한 일을 종류 불문하고 잊어버리셨다. 내가 다시 회상시키지 않으면 그냥 망각 속에 가라앉을 것 같다. 그러면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니다. 당신이 시킨 것은 기억하고 내가 해 드린 부분은 잊으셔서 계속 왜 안 하느냐 재촉하시는 게 좋겠냐고.


아버지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결혼기념일 그리고 생일 과거 연애하던 추억 등등 말이다. 흔히 결혼기념일을 잊어서 부부 싸움 한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그런 적 없다 아버지는 올해도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시고 지지난주였나 그 돼지를 잡았다. 요즘 은행에선 동전 교환을 잘 안 해주니 내게 내밀고 바꿔 오라신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때는 내가 시간이 안되니 기념일 전까지 가서 바꿔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왜 안바꿔 오느냐 물으시는 거였다. 결국 외출 일정을 포기했다. 내가 거래를 하는 은행의 동전 교환 가능 일을 다시 확인하고, 일 년 아니 정확히는 지난번 어머니 생일 이후 모은 동전을 들고 가서 바꿨다. 딸이 다리 아프고 몸이 불편한 것은 , 그래서 병원 가서 물리치료와 주사를 맞아야 함은 아버지에겐 중요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그걸 할 사람도 없으니 내가 해야지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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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지폐로 바꿔 아버지에게 전해드린 것이 지지난주다. 건네드린 지폐는 어머니가 챙기셨다. 그다음 나의 의무는 두 분이 가서 식사할 식당 탐색인데, 그것도 했다. 오늘 두 분이 식사를 하러 나가시는 길에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시는 거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과거 결혼기념일은 당신들만의 시간이라고 동생이나 나는 두고 나가시던 분이 변했다. 내가 물색해 둔 식당에 점심시간에 셋이 다녀왔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샤부샤부를 하는 곳인데 , 나는 서빙을 했다. 야채와 고기를 가져와 끓는 국물에 넣고 익힌 후 건져드리고 사실 그 래서 나랑 가자고 하시는 것 아닌가 의심했었다. 결론은 가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서빙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식당이 아니라 , 먹는 사람이 이것저것 넣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그런 것 못하고 아버지는... 본인이 음식을 담아보려 애쓰셨지만 손이 심하게 떨려 놓치는 것이 반이었다. 드시기 좋게 서버를 이용해 옮겨 드리고 물을 챙기고 냅킨을 챙겨 드리고 등등 어린아이 둘을 돌보고 들어온 셈이다.


내년엔 또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약간은 가슴 아팠던 것이 작년까지는 부부만의 시간이라고 주장하시고 나가던 분이 나를 동반시킨 일이다. 자식이 애틋해 챙긴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에게 멋진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없음을 인정하신 거 아닌지. 뭐 그래도 오래오래 두 분이 계시면 좋겠다. 친구의 동생이 지난주에 한말이 아프셔도 부모님 계시는 것과 안 계시는 것은 다르다나. 부모님은 기둥 같은 존재란다. 이래저래 부실한 나는 그 말이 와서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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