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그날, 모든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했었다.
이후에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갈라진 부분은 있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나 긍휼함을 상실한 이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다른 사건들에서도 재난으로 고통받는 나라에 대한 조롱조에 가까운 언급을 뱉어내는 이들이었다.
이런 이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부곽 된 불행 외에도 한 개인이나 가족이 겪은 여타의 다른 불행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긍휼과 연민이 사라진 모습을 보인다. 특히 기독교인 입네 하는 이들에게 더 많이 그런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참 아프다
과거 서울의 모 교회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사역을 하던 목사의 성범죄 사건 무렵, 교회 내에선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을 내뱉는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하와를 유혹한 뱀을 언급하며 그 피해자가 목회자를 실족시킨 뱀이라고 까지 비난했다고 들었다. 교리에 대한 해석이 인간의 고통을 넘어서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거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한 가족에게 한 사회에 일어난 한 국가에 일어난 엄청난 비극은 절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을 모를 리 없고 몰라서도 안 되는 이들의 언행이 참 수치스럽다.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듣는 중에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글 성경에서의 번역상의 부족함을 영어로 읽어 채웠다. 예수는 친밀한 관계인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 남매의 가정에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건에 대해 예수가 보인 반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는 슬픔이 아니었다. 예수의 슬픔은 비통히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같이 슬퍼하고 곁에 머물러 주는 그것이 우는 이들의 옆에 있는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다. 신앙을 가졌다가 스스로에게 혹은 가족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신앙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슬픈 일 견디기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을 어쩌다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히 나란 인간도 잔인한 언사를 내뱉은 일은 없지만 아픈 이들에게 일상의 관심 정도 이상을 베푼 일이 없다. 내 가족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아파해주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을 만나고 나서야 돕는 손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겪은 것 그리고 내가 겪은 것이 범죄피해자가 된 이들이 겪은 고통과 비교가능하다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상당히 잘 나가던 편인 우리 집이 무너질 때 ㄱ리고 그것이 우리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무너질 때 가장 아팠던 것은 너희들의 잘못이 무언지 다시 생각해 보라 그런 일이 생길만해서 생긴 거다 너희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등등 그러나 이런 이들 외에 그냥 갓만든김치라고 음식이 있다고 건네준 사람 소액이라도 맛있는 음식 사서 식구들이 먹으라 건네준 사람 손을 잡아주고 기도해 준 사람이 더 많았기에 우리 가족과 나는 그 긴 광야를 지나고 있고 거의 빠져나가기 직전이다. 고통을 겪는 이들이 참 많다. 세상이 무섭고 인간이 무서워질 것이다. 그래도 광야를 견디게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게 해주는 것이 인간이다.
함께 울어주고 등을 어루만져주고 맛있는 음식을 건네며 안부를 챙기는 그런 사람이 나도 되고 싶고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중간 정산이다. 긴 글을 쓰며 잠깐 쉽을 가진다 물도 좀 마시고 다시 떠나야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