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번 버스 이야기

입 다무는 다수가 되지 말자

by 아이린

나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 나의 조국! 대한민국!

이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아 내게 남아있는 것은

조국 대한민국 하나뿐이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그가 누구이건 한결같이 증오한다. 그가 노조원이건, 교사이건, 교수이건, 그대로 둘 수 없다.


또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대한민국을 헐뜯는 자는 내 원수이고,

대한민국 안에 살려둬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70% 이상이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


나도 44번 버스의 방조자는 아닌가? ~

버스 44는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제목입니다.

2011년, 중국에서 어떤 여성 버스 운전기사가 버스를 운행하며 산길을 넘고 있었는데,

양아치 2명이 기사한테 달려들어 성희롱을 하였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모른 척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남자가 양아치들을 말리다가 심하게 얻어맞았습니다.

급기야 양아치들이 버스를 세우고 여성기사를 숲으로 끌고 들어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후 한참 뒤 돌아오더니

여성기사는 아까 양아치를 제지했던 중년남자에게 다짜고짜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중년남자가 황당해하면서 "아까 난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니까,

기사가 소리 지르면서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 안 한다!"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중년남자가 안 내리고 버티니까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버스가 출발했는데 기사는 커브 길에서 속도를 가속해서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였습니다.

"전원 사망"!

중년남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합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 합니다.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습니다.

그 여성 운전기사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유일하게 양아치들의 악행을 제지했던 그 중년 남자를

일부러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서, 모른 척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 얘기는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화입니다."버스 44"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나 몰라라' 방조하고 있던 손님들이 중년의 아저씨를 버스 밖으로 쫓아낼 때는 모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버스 안의 방조자는 아닐까? 하고 반문해 봅니다.

다시 한번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침묵의 방조자는 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해 봅니다.

ㅡ글쓴이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ㅡ


우연히 고 김동길 교수의 이 글을 알게 되었다. 20대 초에 김교수님 글을 무척 좋아하고 읽었었다. 사실 나는 그 무렵 극 우까지는 아니나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기에 김교수님이 글을 읽을 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내 성향이 약간 왼쪽으로 가며 더 이상 글을 찾아 읽지는 않았다. 왼쪽으로 가던 내 성향은 어느 틈에 중간에 서 멈췄다. 내 성향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안은 왼쪽 어떤 사안은 오른쪽 그러나 지금은 중간에 머물며 상식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말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 이 나이가 되어서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음의 중요성을 배웠다. 지금 국가는 양 극단이 팽팽하게 마주 보며 소모적인 싸움으로 조금씩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극좌와 극 우는 통한다. 극좌의 인간들이 극우로 극우의 인간들이 극좌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있음을 보고 어쩌지 못하고 중간에 서서 이것이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나 방황하는 사람에게 저 위의 글은 말하고 있다. 방조자가 되지 말자... 침묵하는 방조자는 그 마지막이 벼랑에 떨어지는 44번 나머지 승객의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럼 나 혼자의 힘이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과거 제인구달 박사가 이화여대였던가 거기서 말했다. 당신이 변하면 주변이 변하고 주변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다. 모래사장에 모래 한알이 무슨 소용 있겠냐? 그 모래가 여러 알이면 세상은 변한다는 믿음으로 하루를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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