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의무는 없어요

어느 만화가 이야기

by 아이린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어릴 적은 어릴 적대로 나이 들어서는 나이 든 대로 내 만화사랑은 지극하다. 특히 생활 속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자잘한 만화를 좋아하는데 일본의 와타나베폰이라는 만화가의 만화도 그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다. 가정폭력 아동 학대 동물에 대한 학대 성폭력 그리고 살인 온갖 종류의 사건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아무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당하는 묻지 마 폭력( 내 지인은 버스에서 뒷머리를 모르는 남자에게 맞아 20년도 더 넘게 후유증으로 치료 중이다. 내릴 곳을 기다리며 서 있는 그녀의 뒷머리를 어떤 사람이 치고 내렸단다. 버스 승객들은 남편인 줄 알고 그 사람을 잡지도 않았다나. 그 지인은 어머니 친구로 과부시다) 그리고 묻지 마 살인 등등 태어나서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되어 살다가 평화로이 숨을 거두는 것이 대단한 일이 된 세상이다.. 질병이나 전쟁 그리고 굶주림등이 아닌 이유의 사망이라니..


사망사건 말고 폭력도 참 할 말이 많다. 모든 종류의 폭력이 상처를 남기지만 어린 시절 가장 믿고 의지하며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에 의한 폭력은 굉장히 오랜 시간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를 극복하기란 힘든 일이다. 앞서 이야기한 와타나베 폰은 자신이 겪은 정서적 학대와 그 극복과정을 만화로 그렸다. 본인 스스로 유독 그 리며 힘이 들었다는 만화 나를 사랑하고 싶어 에서 그녀는 과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만화의 톤은 담담하지만 절대 내용은 담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성인이 된 자신에게서 보이는 소심함 우유 부단의 근원 그로 인한 일종의 자기 학대의 근원이 어머니의 정서적 학대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모든 이가 그런 일을 겪는다고 그녀처럼 우울해하거나 자신을 잃고 폭식 무질서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상에게서 단절되고 그것을 스스로 힘으로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가 말하기를 칠 맞은 데가 많았다고 말했다. 준비물을 잊어먹든지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도로 챙겨 오지 못한다든지 정리 정돈이 서툴러 자주 주변을 어지럽힌다든지 말이다. 몇 살 때의 일인지는 만화에서 나오지 않았으나 초등학생 정도의 모습 그림으로 미루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도시락을 챙겨 오지 않았다고 따귀를 맞은 후 발가벗겨져 밖으로 쫓겨났단다. 그때는 겨울이었단다.


그녀를 학대한 어머니도 나름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다지 여유가 없는 생활을 꾸려 나가느라 , 남편과 시부모 자식들을 돌보느라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딸이 특히 유약한 성격인 것으로 보이는 딸이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풀 배출처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동네에서 약간 모자란 아들을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발가벗겨 쫓아낸 아버지에게 우리 어머니가 야단을 치시며 아이를 챙기는걸 본적 있다. 딸이 쫓겨날 때 집안에 아버지나 할아버지 다른 가족이 있었다는 게 더 기막혔다. 다행히 동사직전 아버지가 집으로 몰래 들여보내줬다나.. 에피소드를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 학대를 방관한 어른들에게 더 큰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부모와 어린 시절 함께 지내지 못했다. 내 주양육자는 할머니였다. 나는 내 할머니에게 내가 어쩔 수 없는 성별의 문제로 괴롭힘을 당했는데, 이것은 내 부모와 함께 산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했다. 다행히 내 부모는 할머니가 행하는 괴롭힘을 중지시켜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집에 다른 어른이 있었는데도 그토록 학대를 당했다니...


그녀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도쿄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 과정 역시 기가 막혔다. 그녀는 너무 오래 학대당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무기력 상태였다. 그런 그녀를 격려하고 집에서 벗어날 용기를 준 선생님 이름도 모르는 그분 정말 대단히 좋은 일 하셨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만 잠깐 돌아갔단다. 어머니와 연락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어린 시절친구는 그래도 부모인데..라는 무신경한 책망을 건넸다. 부 모 아니냐 돌아가시면 후회한다. 전혀 피해자가 아니면서 피해자처럼 구는 내 동생에게 가끔 내가 하는 말이 그 말이긴 하다. 그래도 부모다...


친구를 만나고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그녀에게, 남편은 자초지종을 들은 후 용서를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균형 잡힌 정서를 가진 사람이었다. 만화 속 그녀의 남편은 실제도 그런지 모르나 그녀를 격려하고 대로는 그녀의 도전에 함께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부모복 없으면 배우자 복도 자식복도 없다는 게 그녀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이후 만화 속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조금씩 해내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일을 한다. 이런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목숨을 잃거나 ,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집에서 튕겨 나온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가끔 극심한 학대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의 사건이 보도될 때 우리 모두는 분노한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여전히 어디에선가 아 이들이 다치고 때로는 죽는다. 아닌가?


운 좋게 어른이 되더라도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회복되어 보통의 삶을 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혹시 주변에 어려운 아이나 사람이 있는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음도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러나 함부로 용서를 말하지 않음도 우리가 할 일이다. 밀양에서 아들을 죽인 이 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말에 여주인공은 하나님께 분노한다.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무슨 권리로 용서하느냐고... 나를 아프게 한 이를 용서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아팠던 이유 상처받고 힘들었던 이유가 내게 있지 않음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이를 용서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그 피해자가 되었던 자신은 용서하고 쓰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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