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돌아가자

보수의 양심

by 아이린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보수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을 읽기 시작했다. 뭔 생각으로 샀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책꽂이 한 구석에 있지 뭔가. 베리 골드워터의 책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기념비적인 책으로 인정받는단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극우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 보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 기득권과 질서를 수호하려 하지만, 극우는 종종 '법을 도구화'하거나,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법적 절차를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민주당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 부분에서)이 두 집단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리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정통 보수의 목소리가 극단적인 소음에 묻혀버리게 된다, 한마디로 보수의 가치 오염이 일어나는 것이다.


흔히들 보수주의는 고리타분하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법치주의 그리고 전통의 점진적 보존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질서 내에서의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조갑제 선생의 말대로 보수주의자는 품위가 있다. 그리고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그리고. 개인차를 인정하되 법적 평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법 앞의 평등) 반면 극우는 민족/인종적 순혈주의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강력한 국가 권력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급진적 혁명 또는 과거로의 폭력적 회귀등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개의의 삶을 통제하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정부를 보니 데자뷔가 느껴지지 않나) 특정 집단과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시스템 그리고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극우의 행태와 진보적입네 하는 현 정부와 여당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서이다. 누군가가

이 시대를 사는 너는 무슨 생각으로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 물었다. 그에게 이 급류 그리고 소용돌이 속에서 "익사만이라도 면하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나라는 소시민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것 안다. 법학을 전공하고 민법 석사까지 마쳤다. 법이 나에게 밥을 먹을 기회를 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법과 법과 질서'의 정교함을 사랑한다. 지금의 정치적 난기류와 상실된 상식은 단순히 보기 싫은 장면을 넘어 사고 체계가 위협받는 통증이다.


보수와 극우는 '변화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목적수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보수는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유와 질서를 지키자"라고 말하고, 극우는 "우리 집단이 최고니 나머지는 배제하거나 억압하자"라고 말한다. 읽기 시작한 책에서 골드워터는 흑백 분리 교육을 옹호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여 서라기보다(물론 결과적으로는 비판받지만), 그의 철저한 '연방주의(Federalism)' 철학 때문이란다. 미국 헌법에는 교육에 대한 권한이 연방 정부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골드워터는 "헌법에 없는 권한을 연방 정부가 휘두르는 것은 독재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보수주의자 입네 하는 트럼프는 헌법에 없는 새로운 권한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데 베리 골드워터가 보면 무어라 하려나?) 그는 교육 정책을 결정할 권한은 각 주(State)에 있다고 보았다. 설령 그 주의 결정이 도덕적으로 나빠 보이더라도(예: 흑백 분리), 연방이 강제로 개입하는 순간 '지방 자치'와 '제한된 정부'라는 보수의 원칙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당시 인종차별을 유지하고 싶어 했던 남부 정치인들에게 훌륭한 '정치적 방패'가 되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골드워터의 주장을 읽을 때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우리나라 역시 교육 시스템이 변해왔다. 교육감의 정치 성향에 따라 교육이 좌지 우지 되고 시험제도가 널뛰듯 바뀌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준다면 어떻게 되려나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며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골드워터 본인도 나중에는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과 대립하며 훨씬 자유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반면, 극우는 여전히 '법적 절차'나 '헌법적 한계'보다는 '우리 집단의 힘'을 우선시한다.. 골드워터가 헌법적 절차를 지키려다 비판을 받았다면, 극우는 헌법 자체를 무시하려 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내가 가끔 드나드는 커뮤니티에서 탈북 한 분의 글을 읽은 적 있다. 김정은의 폭압 강요가 싫어 넘어왔더니 여기는 형태만 다른 두 종류의 폭압이 있더라.. 그는 진정한 보수주의는 없는 것이냐 물었다.


진정한 보수는 "국가는 개인의 삶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하며, 법치라는 질서 안에서 개인이 책임지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라고 한다. (골드워터가 정부의 교육 개입을 반대한 이유도 이 맥락란 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극우는 강력한 지도자가 국가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집단을 '적'으로 규정해 배제하려 한다. 이건 보수라기보다 전체주의(Totalitarianism)적 속성에 가깝다. 민주당의 개딸 정치 김어준이 보여주는 팬덤 정치 그들과 이 전체주의 자들의 차이도 나는 모르겠다.


서구 보수주의가 왕권에 맞서 '나의 재산과 자유를 건드리지 마라'는 투쟁에서 시작된 반면 한국의 보수 담론은 서구의 '개인적 자유'나 '국가 권력의 제한'이라는 가치 투쟁을 거쳐 형성되기보다, 냉전 상황에서의 반공이나 국가 주도의 성장이라는 특수성 위에서 세워졌다. 민주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철학적 합의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 역시 우리나라에서 보수 담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생각한다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원 신봉기 교수는 본인의 유튜브에서 시스템과 체제가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대표가 누가 되어도 변화가 생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즉 "대통령이 곧 국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면(당대표가 당원 의사의 총합이라는 전제적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시스템(헌법, 법치) 보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힘을 숭상하는 것이므로 보수주의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럼 앞서서 누군가 가 너는 무엇을 하고 있냐는 물음에 당시는 대답을 못했지만 그냥 지금 정리된 생각을 풀어보며 글을 맺는 다 모두가 휩쓸려 갈 때 "이건 보수가 아니다", "이건 상식이 아니다"라고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미 파도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가장 강력한 헤엄이다.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처럼,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변하지 않는 원리를 붙잡고 있는 것 그것이 나만의 섬을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있다. 부족할지 모르나 나의 글이 나의 생각이 지금은 힘이 없어 보여도, 나중에 물결이 잦아들었을 때 누군가에게 "우리가 놓쳤던 상식이 이것이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소중한 지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


누구나 용이 될 필요 없다. 가재 게 붕어로 따뜻한 연못에 살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면서 자신의 자녀는 용으로 키우려는 지칭 강남 좌파와 법 원 공격을 서슴지 않는 그리고 주변에 피해를 끼치건 말건 광화문 한편에서 소음 공해를 내뱉는 이들 상식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 본질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입 다물고 있지는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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