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란

직접 경험했던 어느 날

by 아이린

나는 직장이 문을 닫은 후,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실업수당 잠깐 타 먹었지만 나이는 재취업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점점 나빠지는 몸 상태도 어디 취업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몸이 아프지만 정신은 누구보다 예리하고 지적 능력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자부해도 나라는 사람이 일할곳은 없었다. 자원봉사로 아이들 빈곤층 아이들 공부라도 가르치고 싶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처지라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건물엔 갈 수도 없다.


지금 그래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학점등록을 하고 대학원 진학 위한 공부를 시작할 준비 중이다. 법학 석사 학위는 있지만 지금 공부하려 하는 분야에는 학부 과정의 몇 과목을 이수한 증빙이 필요하다나.. 뭐 아무튼 돈을 벌 방법도 없고 그냥 그래서 공부를 하면서 할 일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얹혀 살수 밖에 없었다. 장애인 신청을 해 보려 했지만 검사에 드는 비용도 그렇고 나 같은 상태는 장애인도 아니라나.. 재작년 가을 아버지 연금지급이 정지되었다. 원인은 동생이 아버지 카드를 몰래쓰고 갚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의 발병 기타 등등으로 어머니나 내가 정신이 나가 있을 무렵의 일이다. 카드대금을 갚아야 했다. 아버지의 신용이 좋아선지 이 녀석이 카드대출을 받았고 그 연체가 상당했다. 아버지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 나와 어머니 아버지가 살고 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신용회복 위원회로 갔다. 개인 회생 신청해야 할 금액이 아니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신용회복 위원회에 서류 접수한 후에는 연금 통장을 바로 쓸 수 있단다. 신용 회복 위원회로 가기 전 주민센터에 긴급 생활비 신청을 해봤다. 우리는 안된단다. 상황을 다 설명했지만 아버지가 연금을 받아서 안된단다. 도돌이표였다. 해결이 막막했다. 공과금 식비 약값.. 저금 한 푼 없고 정말 막막했다. 기적처럼 미국의 친척이 준 소액의 돈으로 불을 껐다. 그리고 신용 회복 위원회에 가서 신청을 마치고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다.... 매달 납부 금액은 적지 않고 생활비도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고 있다. 돈은 분명 부족하다. 그러나 쌀 반찬류 가끔 들어오는 소액의 돈들이 우리 생활을 이어가게 한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물과 빵을 건네셨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딱 죽지 않을 만큼의 도움으로 산다. 무신경한 친척이 왜 정부 보조금 신청을 안하냔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연금 액수가 제법 되는 탓인데 이걸 포기할 수 없잖나. 잠깐 돈이 완전히 끊긴 순간 나는 패닉에 빠져 공원 한편에서 울며 하나님을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리는 살아냈다.


어느 고독사에 대한 뉴스가 잠깐 구글 팝업으로 떠서 읽었다. 완전히 끊길 정도로 공과금을 못 내지 않는 한 (우리가 끊기는 것 모면만 하며 산다. 당시에도 그랬다) 복지 영역엔 못 들어간다. 아예 아무것도 안 내고 버팅기고 데굴데굴 구르지 않는 한 복지의 영역엔 못 들어간다. 친척은 꼴 같지 않게 자존심 챙긴단다. 그런 것 없다. 누구든 도와주는 손은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다. 단 받은 후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언젠가 나도 우리도 도울 능력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조금 힘들어 보이는 사람 있으면 김치 한 포기를 혹은 과일 한 봉지라도 주시라. 그까지 것이 아니다. 정말 극한에 몰려본 이로써 지금도 힘든 이로써 말한다. 그 조그마한 것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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