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캠퍼스

추억

by 아이린

법과대학 건물 맞은편 공학관 앞 잔디밭을 지나면 담이 이어진다. 그러나 얕아서 여학생들도 가볍게 넘을 수 있었다. 출입문이 있는 위로 걸어 올라가 다시 걸어 내려오는 번거로움을 감당하기 싫었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담을 넘어 다녔었다. 치마를 입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지.

몇 년 전 우연히 모교를 지나갈 기회가 있어 보니 그 담은 사라졌다. 월담을 하던 낭만은 더 이상 없겠지?


넘어서 바로 길을 건너면 작은 2층 건물이 있었다. 버스가 그 길을 그냥 올라가 서니 그 건물이 학생들의 시선을 끄는 일은 잘 없었다. 나도 입학한 지 한참 지나 선배가 이끌지 않았으면 거기 가지 않았을 거다. 거기는 그만큼 작은 건물이었다. 건물 일층엔 뭐가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무조건 작은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학교 정문 쪽에는 카페라고 부르는 가게들이 있었지만 그곳은 다방이었다. 왜 다방이라 부르냐고?

한잔에 1000원인 커피가 유일한 메뉴였다. 커피와 프림 설탕을 넣어 잔을 건네주는 언니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이름을 까먹은 30대 정도의 그 언니 제법 친절했던 것 같다.. 갓 스물이 아니다 그때는 만 18이었네. 어린 계집에 눈에 그 언니는 제법 우아해 보였다.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서는 건너편 학교가 보였다. 내가 공부하는 건물이 보였고 월담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냥 커피 한잔 놓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자리가 없으면 서 있기도 하고 왜 그렇게 거길 좋아했을까? 그냥 자판기 100원짜리 커피만 마셔도 되었을 텐데 나는 출석도장 찍듯 거기를 다녔다. 별로 사교적이 아닌 내가 그곳에서는 붙박이들 혹은 뉴페이스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위로 버스가 끊겨도 도망을 와 피신하는 곳이기도 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캑캑거렸다. 그리고 다방커피를 마시며 시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때로는 전경에게 체포되지 않은 동기가 나타나면 내가 커피를 사기도 했다.



캠퍼스엔 낙서 노트가 있었다. 누구든지 아무 글이나 쓸 수 있었다. 나도 적었다. 이런저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낙서를... 그와 오랜 시간 낙서노트로 필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가끔 공강이 되거나 함께 할 이가 없어도 거기 갔다 거기서 그 노트를 읽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쓴 내용도 있었지만 그냥 써놓은 이런저런 글귀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 노트 생각이 가끔 난다. 그 많은 글들이 담긴 노트들을 그 언니는 그냥 버렸을까?



언제 그곳이 없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어느 날 보니 다방 캠퍼스는 사라졌다. 대학원 건물은 학교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았기에 거기까지 걸어내려 가 커피 마실일이 없었다는 뭐 그런 이유도 있었다. 공부에 너무 바빴다는 게 대학원 건물 내의 200원 자판기가 맛있어서였다는 그것도 이유겠지 다방이 사라지고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낭만도 사라졌다.


가끔 아주 가끔 그 담이 꿈에 보인다. 담을 넘던 내 모습 그리고 담을 넘는 내 손을 잡아주던 그도 보이고 함께 길을 건너 다방 캠퍼스로 가던 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 지난 일은 잊어야 하는데 왜 이리 독하게 박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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