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정말 많이 돌아다녔었다. 해외여행이 허락되자마자 배낭을 메고 아프리카와 북한 빼고 다 가봤다. 아 남미는 못 갔구나 그 무렵엔 디지털 카메라나 지금 같은 촬영도구 없었다. 작은 카메라하나 메모노트 하나 노트는 잃어버린 지 오래고 똑딱이 사진기로 찍은 사진만 좀 남았다. 혼자 여행이니 내 얼굴을 찍어줄 사람도 없고 요즘 핸드폰으로 셀카 찍듯 할 수도 없는 똑딱이로 얼굴을 거의 담지 못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앨범을 많이 없애면서 내 사진도 많이 사라졌다. 뭐 별로 미련도 없었다. 내 얼굴을 남겨두는 게 무슨 의민가 싶은 시니컬함도 남아있었고 몇 장의 사진들을 핸드폰으로 스캔해 클라우드에 저장했는데 문제는 그 여행장소를 어느 해에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딘지 기억하니 다행인가? 핸드폰 스캔이어선지 화질은 별로고 그래도 가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여행을 회상해 본다. 사진이 불러일으켜주는 기억만 조금 남아있다. 왜 그리 돌아다녔을까?
지금 이렇게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발이 묶을 수 있음을 알아서일까? 그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든 안정되었을까? 지금도 내 발은 어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삶의 여러 문제가 목줄처럼 붙들어 이곳에 머물게 할 뿐이다. 하긴 이제는 배낭을 멜 수도 없네. 걸을 수도 없고.
정말 떠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한 것은 여행보다는 떠나는 과정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공간이면 어디든 좋았던 것 같다. 한국어가 들리지 않으면 내 속으로 들어가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여행이 좋았나 보다. 누군가가 지적했듯 정석적 사고를 하는 내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때문이었기에 내가 그토록 떠나려고 했나 보다.
알링턴 . 영원의 불도 물론 봤다.
대체 뭘 보겠다고 워싱턴에 갔을까? 박물관은 실컷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