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너무 피곤해
– 괜찮게 늙는 중입니다 ㉔
예전엔 그랬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1시간 반 걸려 강남으로 출근했다.
사람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고,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쓰러졌고,
주말이면 그냥 누워서 시간을 버텼다.
그땐 그게 당연한 삶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가끔 강남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기만 해도 하루가 파김치가 된다.
어깨에 힘을 줬던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땐 어떻게 그 모든 걸 견디고 있었을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노화란 "신체는 느려지지만 인생의 해석은 깊어지는 시간"이라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자주 멈추고, 생각하고,
조용히 스스로를 돌본다.
에리히 프롬도 말했다.
“성숙이란, 갖는 삶에서 존재하는 삶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말의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예전엔 시간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비워낸 시간에 나를 담는다.
체력이 예전만 못해서
사람 많은 곳을 오래 걷는 것도, 몇 날 며칠 이어지는 약속도 버겁다.
그런데, 바로 그 ‘버거움’ 덕분에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 나를 진짜 편하게 해주는 관계,
내가 진짜 머물고 싶은 공간이 무엇인지.
늙어간다는 건 때로 피곤하고, 더디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느린 걸음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무리해왔는지,
그 무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미뤄뒀는지.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덜 대단하지만, 훨씬 단단하다.
그건 살아온 시간 덕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애쓴 덕분이다.
– 하루에 한 번, 일정을 비우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을 만들어본다
강남만 다녀와도 피곤한 날,
나는 내 몸과 마음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더 정확히 알게 된다.
그게 어쩌면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