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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n 03. 2021

꿀삐의 난임분투기①

내가정말 난임이라구요?!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의 돌파구를 난임 휴직에서 찾기로 했다.                         

2021년 1월, 일이 고되기로 악명 높은 부서로 발령이 났다.

곧 승진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일이 많은 것 따위는 버틸 수 있지만,

내가 발령받은 부서에는 승진을 앞둔 동급의 선배, 동기들 몇 명이 나보다 먼저 와있었다.

나는 뼈가 빠지게 일을 해봤자 그들보다 근무 성적 평가를 잘 받을 수 없고 승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네가 일을 잘해서 거기로 데려갔나 보다."라고 말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했다.

"고생만 하다가 승진도 못하고 나올 곳으로 어떻게 너를 보낼 수가 있냐."


그렇게 새 부서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는 패턴이 한 달 정도 지속되었다. 주말도 회사에 반납했다.

남편은 결혼 3개월 만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전기사 역할을 해줬고 아침저녁 준비, 설거지, 빨래, 청소,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 비우기 등 모든 살림을 전담했다.


우리 부서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도 초과근무와 주말 출근을 밥먹듯이 했다. 다들 그런 생활을 불평 한마디 없이 잘 버텨냈다. 어쩌면 일부러 그런 사람들만 모아놓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작정 쉬고만 싶었다. 휴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매일매일 야근을 하면서 그곳에서 도망칠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휴직. 그런데 휴직을 하려면 사유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휴직이 '요양 휴직'인데 특별히 아픈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

후.. 난 휴직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봐. 하고 포기하려던 참에 난임 휴직이 요양 휴직에 포함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 난임 휴직이야!

다행히 나는 결혼을 했고 또 아이도 없으니. 서른아홉의 난임 휴직이란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이지 않겠지.


난임 휴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난임 휴직 중인 지인에게 물었다.

그녀는 난임 전문 병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 

나는 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면, 난임 진단을 어떻게 받아야 하지?'




처음 난임 병원에 가다.

2월이었다. 생리 3일째 되던 날 예약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간단하게 신상을 작성하고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여자가 받는 기본 검사에는 AMH 검사, 나팔관 조영술, 배란일 초음파 검사가 있는데 나는 AMH 검사를 먼저 받기로 했다. AMH 검사는 간단하다. 채혈실에서 피만 뽑으면 된다.


삼일 뒤 생리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 병원을 다시 찾았다.

두 번째 기본 검사인 ‘자궁난관 조영술(나팔관 조영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임신을 위해서는 나팔관의 개통성 여부가 중요하다. 나팔관은 난소와 자궁 사이를 연결하는 긴 관으로 난자, 정자, 수정란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나팔관이 막혀있다면 난자와 정자가 만나지 못하므로 자연임신을 할 수가 없으며 이럴 때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수밖에 없다.


검사 전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선생님, 나팔관 조영술 할 때 많이 아픈가요?”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열 명중에 한 명 정도 아프다고 해요.”

선생님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검사 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하얀 거짓말이었음을..

나팔관 조영술 과정은 이렇다. 질을 통해 자궁 내로 조영제를 투여한 후, 조영제가 나팔관을 잘 통과하는지 엑스선을 쪼여 자궁을 촬영한다.

처음 조영제가 몸안으로 들어갈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잠시 후엔 생리통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생리통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악' 소리를 지르기 직전에야 검사는 끝났다.

(나중에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 같이 다 아팠다고 했다..)

검사 후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가야 하는데 나는 일어날 수 없이 아파서 한참 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다.




정말 내가 난임이라구요?

선생님께서는 검사지를 보여주시면서 ‘AMH 검사’ 결과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내 수치는 3.59ng.

내 나이는 만으로 37세인데 난소 나이는 26살로, 난소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11살이나 어리다고 한다.

난소 나이가 젊다고 해서 임신이 반드시 잘되는 건 아니지만, 난소 나이라도 젊다니.. 기분은 좋았다.


다음은 ‘자궁난관 조영술’ 결과.

선생님은 컴퓨터 모니터로 나팔관 촬영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팔관 양쪽 모두가 막혀있다고 하셨다.

양쪽 나팔관이 꽉 막혀있었기 때문에 아플 수밖에 없었다고..

나팔관이 막혀있으면 자연임신이나 인공수정이 어려우니,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바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검사 결과를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임 진단’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복부의 통증은 까맣게 잊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나는 휴직을 위해서 ‘난임진단서’가 필요했지, 정말로 ‘난임 진단’을 원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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