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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n 05. 2021

꿀삐의 난임분투기②

저 난임 휴직을 해야겠는데요.

저 난임 휴직을 해야겠는데요.

나는 난임 진단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난임 휴직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주말동안 생각한 끝에 바로 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인사팀을 찾아갔다.

휴직이야 내 의지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내가 휴직을 하면 내 업무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인사 담당에게 혹시 내가 휴직을 하고 나면 우리 부서에 인원이 충원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녀는 단호하게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니면 추가 인력은 없다고 말했다.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왔다. 팀장님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팀장님은 내 첫 팀장님이기도 한데, 회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믿는 사람이었다. 5년동안 이어진 인연으로 나는 팀장님의 '최애 사원'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사팀 보다도 팀장님께 휴직을 하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주 목요일 저녁, 나는 그때까지도 팀장님께 말씀을 못 드렸다. 

그날따라 사무실에는 팀장님과 나 둘 뿐이었다.

7시쯤 출출하다는 팀장님_우리는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사이좋게 컵라면 스프를 컵라면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회의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뜨거운 라면을 후루룩 삼키고서 팀장님이 말했다.

"너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 별일 없지? 내가 바빠서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네?"

나는 라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젓가락에 라면을 돌돌 말면서 말했다.

"저 잘 못 지내요 팀장님.."

"왜? 무슨 일이 있어?"

"그게요.... 일이 있긴 있는데요...."

한 5초의 정적이 흐르고 팀장님이 먼저 말했다.

"너 혹시 퇴사하려고?"

"퇴사요? 아니 퇴사까지는 아닌데.."

"그럼 휴직하려고?"

"네...저 휴직하려구요."

팀장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었는지.. '만약 팀장님이 잡으면 어떻게 하지?' '한 달만 더 일하겠다고 말해야 하나?' '화를 내시진 않겠지?' 별별 생각을 다했는데.. 팀장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네가 휴직을 한다는데 이유가 있겠지.. 이왕 휴직을 하기로 했으니 최대한 빨리하는 게 낫겠지?"라면서 이유도 묻지 않으셨다. 그 모습에 내가 울었다.

그다음 날 과장님을 찾아갔다. 난임 진단을 받았는데 휴직을 해서 임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과장님은 말씀하셨다.

"**씨, 나는 회사보다 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젊었을 때는 회사밖에 모르고 가족에게 소홀히 했어요. 이제 퇴직할 때가 되니까 그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가정을 돌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결정 잘했어요. 회사 걱정은 하지 말고. 꼭 좋은 소식 들려줘요."


그렇게 내 휴직은 바로 진행되었다. 인사팀에서는 결국 사람을 주지 않았다. 

 

걱정은 기우였다. 

내가 휴직 신청서를 내기 전 이미 누군가를 통해서(인사팀밖에 몰랐는데) 내 휴직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십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안 그래도 소심한 나는 휴직하는 날까지 혼자 끙끙 앓았다. 내가 회사에 피해를 끼친 건가, 이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나를 욕할까, 다시 돌아오면 내 자리가 없을까.. 

나는 안 했어도 되는 걱정을 했다. 내가 없으면 멈춰버릴 것만 같던 사무실은 지금 내가 없어도 너무 잘 돌아간다. 업무를 인계해준 후배에게선 전화 한 통 안 온다. (업무 인계가 완벽한 건가.. 내가 했던 일은 아무나 맡아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유난스럽게 힘들다고 했던 건가. 아무래도 후자겠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 같은 ‘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서 잊힌 듯하다. 아니, 나는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아직도 내가 휴직한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ㅎㅎ)

동료들에게 미안함, 상사에게 들었던 죄송함, 민망함은 휴직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누굴 걱정할 틈이 없이 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버렸으니까.

휴직을 하자마자 남편과 제주도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삼일에 한 번씩은 요리를 배우기 위해 친정을 찾았다. 그날엔 엄마랑 장을 보고 집에 와서 같이 반찬을 하고 점심을 해먹었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엄마를, 남편을 태우고 운전 연습을 했다. 매일매일 남편에게 아침저녁을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아내로서, 딸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휴직 삼주 차, 생리를 시작했다. 나는 시험관 시술 준비를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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