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상가에 있는 이디야 커피숍에 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오랜만의 휴식이다.
날씨가 너무 좋은데. 밖에 나오지 않는 건 죄를 짓는 느낌이랄까.
4월 중순. 오늘의 최고 기온은 27도. 한낮이지만 4월이라 그런지 얇은 긴팔 차림이 더 어울린다. 아직 샌들을 신기에는 이르지만 하얀색 여름 샌들을 꺼냈다. 하늘에는 구름한 점 없다. 며칠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은 봄비가 조금 내리고 나서 깨끗해졌다. 아마 롯데타워까지 보일 것 같은.(아, 내가 쾌청한 날씨라고 말하는 날씨의 기준은 서울 어디에서나 롯데타워가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다.) 밖에 나가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얼마나 좋은지.
커피를 마시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vos 노래를 들으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감성에 빠졌다.
‘아, 그리운 20대여.’ 하다가 움찔했다. 아 물론 청춘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결코 20대로 돌아가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젊음은 화려하고 찬란하고 짜릿하고 황홀했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다. 다시 입시 스트레스, 취업 스트레스, 수많은 이별과 좌절, 어떻게 살 것인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등 물음표로 가득했던 일상 속에 나를 던져야 한다면, 아찔하다.
젊음은 열정과 패기로 좋았다. 자신만만했고. 도도했고. 안 되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뭔가 될 거라는 근자감도 있고.
그러면서도 지질하고. 한없이 불안했다. 무엇보다 가난했다.
스물 일곱에 취업을 했는제 내 통장에는 늘 돈이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은 엄마에게 송금했고, 엄마 몰래 썼던 빚을 갚느라 허덕였다. 늘상 싸구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으며 외모에 투자할 돈도 없었다. 내가 준 월급을 지인에게 빌려준 엄마가 돈을 못 받게 되면서 정말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돈만 없었냐. 아니, 마음도 가난했다.
첫 직장은 전공을 살려서 들어간 중견기업이었는데 3년 정도 버티다가 퇴사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3년 동안 수험생으로 살면서 영화 한 편 볼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잔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으면 13시간씩 공부에 매진했다. 필기시험에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엄마는 암수술을 했다. 나는 면접 준비 대신 항암 치료를 하는 엄마를 돌보아야했다. 운은 좋아서 면접에 합격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합격할 자신이 없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직장을 잡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서른 후반에 결혼을 하고 마흔엔 출산을 했다.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행복은 크고 거대한 것인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행복이란 뭘까 생각했다. 막연하고 모호한 행복을 손 안에 움켜쥐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벌고 열심히 모았다. 그래도 만족을 몰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를 채찍질했다.
여전히 행복에 대한 정의는 내릴 수 없다. 그런데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아무런 걱정이 없고, 고통이 없고, 미래가 불안하지 않고, 우울하지 않고,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이가 들면서 만족에 대한 기준이 적어진 것도 있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내 자신과 합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무엇보다도 행복한 이유는 ‘나를 닮은 생명체’가 주는 기쁨 때문이다.
잠든 아이의 천사 같은 얼굴을 볼 때, 해맑은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아이가 틀어주는 동요에 맞추어 잠옷 바람의 세 식구가 해괴한 춤을 추면서 나는 남편과 꺼이꺼이 넘어갈 듯 웃었다. 벚꽃 비가 흩날리는 3월의 어느 날, 남편과 아들과 산책을 했다. 아장아장 앞서 걸어가던 아들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무언가를 주워 내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벚꽃 잎 두 장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주어 내게 전한 벚꽃 잎 두 장을 보면서 온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뭉클한 순간이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다니던 파랑새. 결국 집에 있던 비둘기가 파랑새인줄 모르고 그렇게 파랑새를 찾아서 헤맸던가.
초록색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 사이에도, 세 식구가 모여 같이 먹는 식사 시간에도
오색찬란한 꽃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노자가 쓴 도덕경 33장에는 지족자부라는 말이 나온다. 그 의미는 ‘만족을 알면 부자다’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부자다. 지금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