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두 번째 토마토처럼 '토마토 주스'나 '토마토케첩'이 되겠다고 말했을 것 같다.
세 번째 토마토처럼 '춤을 추겠다'는 대답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 같다.
참신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토마토로 태어나서 '춤'을 추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데 이렇게 심연을 울릴까. 우주라면 춤을 추겠다고 말했을까? 우주가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얼마나 흐뭇해했을까.
국민학교 시절, 매년 초 장래희망을 써서 내라는 숙제가 있었다. 숙제라기보다는 모르겠다. 그게 뭔지. 여하튼 해마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걸 써 오라고 했다. 나는 뭐가 하고 싶은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볼까 봐 장래희망 칸에 '작가'나 '변호사'를 적었다. 연예인을 적고 싶은 마음을 소심하게 일기장에다가 쓰지 말고(실제로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쓰여있음) 장래희망 칸에 '세계 일주', '월드 스타'라고 적고 생활기록부에 남겼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써서 냈다고 해서 내가 지금 그런 인생을 살았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 '세계 일주를 하는 연예인'이 된다는 걸 상상이라도 해봤다면 인생의 좌표가 조금 변했을 것 같은 생각은 든다.
출산 후 옷을 정리하면서 옷장을 열었다. 옷장에 검은색 옷이 가득하다.
봄에도 여름에도 나는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는다.
이게 다 누구 탓이다.
누구라고 한 명을 지칭할 수 없지만, 내 주변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검은색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단지 '쿨톤'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런 말을 몇 번 듣고 나서 '검은색 옷'만 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컬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기 시작했고, 어쩌다가 밝은 옷을 입었을 때는 불편함, 걱정, 불안감을 느꼈다.
20대 초반에는 몸에 붙는 옷도, 짧은 치마도 잘 입었다. 형형 색색의 옷도 잘 입었다. 옷 컬러에 맞춰서 신발도 빨간 구두를 신고 분홍색 부츠를 신고, 한여름에는 털부츠도 신고 나 하고 싶은 대로 입고 살았다. 다른 건 몰라도 패션에서 만큼은 남의 시선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살았던 나였다. 그때 사진을 보면 평범한 사진이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남'에게 맞추어 옷을 입게 된 지금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제니 조셉이 쓴 '경고'라는 시를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지금은 못 하고 있지만 늙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겠다는 포부와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조금씩 일탈하면서 살겠다는 화자의 다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내 나이 마흔. 중년의 여성으로 진입했다. 남들은 마흔이 무슨 중년이냐고 하겠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면서 '나 때는 안 그랬는데…'라고 나지막이 되뇌고 상대방이 원치 않는 조언을 해주는 (젊은) 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