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삐 Mar 18. 2023

75화. 시어머니와의 관계

친절하지만 친하진 않은 며느리

시금치를 다듬다가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이따금 엄마는 시금치를 다듬다가, 얼마나 시집살이가 싫으면 며느리들이 '시'자 들어간 건 쳐다도 안 본다는 말이 있겠느냐 말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인데 직접적으로 할 순 없어서 제삼자인 다른 며느리에 빗대어 한 말 같은데, 누가 들어도 본인이 시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빠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유독 큰아들인 아빠를 그리 예뻐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아빠는 일찍 가정을 꾸렸고 홀어머니를 모셨다. 엄마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경악스럽게 엄마를 괴롭혔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 때마다 옆에 있는 아빠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할머니를 싫어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와 본격적으로 싸웠었다. 사실 그 이야기로도 브런치를 따로 발행할 수 있을 정도.



요즘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 보면서 힘들게 산다고 하는데, 주변을 보면 시어머니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친한 지인 중 돌싱이 3명인데, 한 명은 전적으로 시어머니 때문에 갈라섰고 나머지 두 명은 시어머니 + @의 이유로 헤어졌다.


나는 다행히 시부모님과의 사이가 원만하다. 고부사이의 갈등을 아주 어릴 때부터 지켜보며 살았기 때문일까. 딸 같은 며느리나,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믿지도, 원하지도 않았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낸다.

친절하지만 친하진 않은 며느리. 그게 나다.


시어머님은 내게 딱히 간섭하거나, 원성을 들을 만한 행동을 하신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시어머님은 70대이신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깨어있으신 편이다.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잔소리는 남편에게 하고, 칭찬은 나에게 한다는 거다. 그리고 남편에겐 안 줘도 내겐 항상 용돈을 준다는 거다.



그런데 출산을 하면서 우리 사이가 묘해졌다. 정확하게는 임신을 하면서. 예전에도 쓰긴 했지만, 어머님은 특정 띠에 민감하셔서 'oo띠는 낳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계속 요구하셨고 그에 맞춰서 임신을 했다. 그때 생긴 날 선 감정이 내 마음 어딘가에 동그마니 숨어있다가 울컥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그리고 두 번 정도는 몹시 울컥했다.


한 번은 출산을 이틀 앞두고 시댁에 방문했을 때다. 내가 출산을 하면 4박 5일 동안 입원을 하고, 남편이 병원에서 함께 잘 거라고 말했다.


어머님은 같이 지낼 거라는 말에 놀라,


"oo(남편)불편해서 어떻게 거기서 자니, 간병인을 불러야지"


라고 말씀하셨다. 아내가 출산 때문에 입원을 하는데 남편 대신 간병인을 부르라니?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지?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1명밖에 출입이 안 된대"


라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어색하게 웃었다. 딸이어도 저렇게 말씀하셨을까 라는 생각에 한동안 시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불편했다.


또 한 번은 출산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었다.

병원 로비에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이 오셨다.

나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고 있었다. 아이를 처음 안고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 몹시 예민할 땐데 시어머님이 아기를 거칠게 가져가셨다.


아이를 뺏기는 느낌까지는 참았는데, 누구도 내 안부를 묻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아직 거동이 불편한, 제왕절개 5일 차의 산모인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투명인간이 된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따뜻한 눈길아이에게만 쏠려있었다. 다행히 친정 아빠가 말을 걸었다.


"몸은 괜찮니."


그래도 어머님은 아이에게 시선을 뺏겨서 끝내 내게 '괜찮냐'라고 묻진 않으셨다.


아. 두 개만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자꾸 다른 일이 생각난다. 그래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위에서 말했지만 어머님은 내게 용돈을 잘 주신다.



아이를 낳고 나서 시부모님은 2주에 한 번 집에 오신다. 차로 10분 거린데 2주에 한 번씩 오시는 거면 꽤 자제하시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귀찮고 불편할 때가 있다. 자꾸 아이에게 단 걸 먹이고, 아버님은 담배 피운 직후에 아이에게 뽀뽀를 하고, 어머님은 자꾸 아이가 아버님을 닮았다고 한다.(내 어릴 적 모습이랑 똑같은데)


시어머님이 오는 주말엔 아침부터 신경이 조금 예민해져 있는데 그럴 때마다 친한 언니 A가 해준 말로 마음을 달랜다.


친한 언니 A : 시부모님 불편하지. 편할 수 없는 존재인 건 맞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 손주 안아볼 시간이 얼마 없어. 그리고 너랑 남편 말고 네 아들을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해 줄 존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니?


그래,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아, 생각해 보니 감사한 거 또 있다. 2주에 한 번은 화장실 청소를 빡세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거!





작가의 이전글 74화. 딱 3년만 참으면 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