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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Feb 26. 2023

72화. 나는 아들을 낳고 싶었다

엄마는 케이장녀

나는 아들을 낳고 싶었다.

내 안에 남아선호 사상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시댁의 은근한 압박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딸을 낳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엄마들이 딸을 원한다고 하는데…. 임신 중에 성별검사에서 '아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는 산모도 많다던데…. 나도 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잘생겼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아들은 지칭하는 거란 걸 알아채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진료실에서 나왔다.

'아들'을 가졌다는 안도감에서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장녀로 태어났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하나 있는데 남자다. 장남이든, 둘째든, 막내든, 다 저마다의 고충이 있겠지만 커가면서 장녀라는 자리가 점점 버겁게 느껴진 것 같다.



어느 날, 6개월쯤 된 우주와 아웃렛에 갔을 때였다. 옆에 지나가던 할머니가 우주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셨다. 아이에게 까꿍을 하고 눈을 맞추면서 귀엽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타인에게서 아이의 칭찬을 들으면 갑자기 경계심이 무너지고 내적친밀감이 생긴다.


할머니와 나는 몇 마디 주고받았을까.

할머니는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둘째는 언제 낳으려고?"


나는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당황했다.


"둘째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요~"


"지금부터 생각해 봐요. 첫째가 아들이니 딸 낳아야지. 딸은 하나 있어야 해요. 내가 얼마 전에 입원했었는데 딸이 수발을 다 들었잖아~ 엄마한테는 딸이 꼭 있어야 돼~"


아 네, 그렇구나. 하면서 어색하게 웃긴 했는데,

이거 어디서 들어본 얘긴데?


십 몇 년 전 엄마가 아산병원에 입원했을 때 엄마로부터 들었던 얘기다.

그때 엄마는 허리수술을 했었는데 수술 후에도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두세 달 정도 입원을 했었다.

거동이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혼자서 대소변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병원으로 와서 엄마를 돌보다가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잤다. 아침이 되면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만 하고 등교했다. 주말에 아빠가 간병을 하러 올 때면 집에 가서 씻고 쉬었다.


그때 엄마는,

'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남편도, 아들도 불편하고 딸이 최고라고 했다.


칭찬을 들었는데, 칭찬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하필, 내가 간병인으로서 최고라니.



우주 돌잔치 때 만났던 시이모님도 둘째는 딸을 낳으라고 했다. 콕 집어서 올해 낳으라고 했다.

늙으면 엄마에게는 딸이 필요하다고. 딸이 효도한다고.

본인의 딸 셋을 차례차례 둘러보면서, 자랑이라도 하듯이 내게 말했다.


효도할 사람이 필요해서, 딸을 낳으라는 거야 뭐야, 어쩐지 심사가 꼬여서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다음에는 웃지 말고 정색을 해야겠다.


그나저나 딸은 엄마에게 그래야 하는 존재인가?



불과 며칠 전 엄마와 효도여행을 갔을 때 숙소에 도착한 엄마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는 딸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 딸이 없어서 이런 곳도 못 오겠다."


나는 말했다.

"엄마, 나는 자식한테 바라는 거  없어. 지금부터 내가 벌고 모아서 와야지."


사실이다. 나는 자식한테 기댈 생각이 없다. 자식이 뭘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다.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달라는 소리만 안 했으면….



언젠가부터, 아니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나, 엄마는 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유무언의 압박을 줬다. 여행은 다 딸이 보내주고, 비싼 물건은 다 딸이 사주고, 사위가 사주고 그런다고.

아들은 키워줘 봤자 소용없다고.

그래서 엄마는 아들에겐 더 바라지 않았나 보다.


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꾸역꾸역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했다.

결혼 후에도 엄마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날 찾았다. 작고 크게 2년 동안 준 돈이 꽤 된다.


그게 아까운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엄마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엄마랑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너는 먹고살 만하니, 집은 아들에게 물려줘야겠다면서 은근슬쩍 양보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아직 자리도 못 잡았고, 모아둔 돈도 없으니, 아들에게 주고 싶다는 거였다.

왜 나는 부모님께 주기만 하고 동생은 받기만 하냐고 맞받아치고서 웃었는데

장난인 줄 알았던 엄마가, 네가 안 받겠다는 각서를 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고, 우리 엄마가 꽤 진심이구나 싶었다.

전화를 끊고는 '상속재산분할청구소송'을 검색했다.


지금부터 소송을 준비해야 하나.



나이 들면서 드는 생각은,

받는 자식과 주는 자식은 동일하지 않으며,

아무리 잘해도 부모는 아픈 손가락에 더 마음이 간다는 사실이다.


후, 아들만 하나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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