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강박

아직 읽고 있어요.

by 오늘보다 내일 더

2년째 읽는 책이 있다. 이름하여 총, 균, 쇠

몇 년 전 이미 한 챕터를 읽다 덮어두었던 실패의 경험이 있는 책이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이 책을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전에 읽던 곳 다음부터 이어서 읽어가려 했지만 솔직히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서, '이번에는 꼭 마무리짓겠다.'는 결심을 한 거 같다.

그리고는 3-4번의 고비가 더 있었다. 그럴 때면 중간에 멈춰놓고는 다른 재밌는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눈을 떼지 못하는 몰입감 넘치는 소설책 여러권과, 마음의 위로와 공감을 주는 에세이, 그보다는 얇은 두께로 유혹하는 있어보이는 교양서들로 바람이 피고 나서야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영감 같은 이 두꺼운 책 앞에 다시 앉곤 했다.

이미 책 표지는 까맣게 때가 탔고 앞부분의 내용은 벌써 다 잊어버렸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 한 챕터만 남았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루던 숙제 앞에 밤늦게 끌려온 사춘기 아들 모양으로, 겨우 이불 속에 누워서야 자기 전에 책을 펼치니 우습게도 한 달째 같은 페이지다.

큰 아들이 한결 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 엄마, 책을 너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거 같은데?"

" 아들, 잠 안 올 때 읽어봐 추천. 바로 꿀잠 잘 수 있어, 팁을 더 주자면, 성경책 특히 누가 누구 낳고 하는 마태복음 그 첫 장 읽어봐. 직빵이야. 10분 안에 잠들 수 있어."

아들의 그런 놀림을 받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어떠한 부채감인지 의리인지 성실함인지 모를 마음으로 책을 베개 삼아 잠자리에 든다.


-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면, 그 책을 '읽었다.'라고 할 수 있을까?

- 발췌독처럼, 필요한 것만 골라 읽는 경우에도 "나 그 책을 읽었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지식한 나는 책의 마무리 장에 도달하지 못한 책을 늘 "아직 읽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달리기에서 결승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걸어서라도 결승점에 도착해야 되는 거라고 배운 나는, 왠지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은 뒤가 구리다. 하여튼 그렇다.

산도 정상을 찍지 않고 중간에서 돌아내려 오면, 올라갈 때 흘린 땀이 다 허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내가 책 읽기를 통해서

등산을 통해서

달리기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책의 내용이나 체력, 멋진 경치 구경이 아닌 성취감인 것이다.


'총, 균, 쇠를 다 읽었다.'

이 한마디를 뒤가 구린 느낌 없이 당당히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단순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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