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2

우주배경복사

by 달삭

대학에 올라와서 듣게 된 철학 강의 때 철학은 세공 작업이라는 것을 들었다.

인상깊은 말이었다. 전공 수업을 제치고 가장 재미있는 강의였고.



세공작업. 개념을 다시 재정의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수업 때 세공작업의 예를 인용해보면,

나무의 이해라는 것을

이해→근본적 조건 으로 보면

나무의 이해→ 나무의 근본적 조건→ 나무의 뿌리로 세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껏 11,12,13,14 에 걸쳐 눈에 보이지 않는 것 2화, 눈에 보이는 것 2화가 연재되었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시공간과 엔트로피

눈에 보이는 것. 빛과 우주배경복사.


시공간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나? 나무가 늙어가는 것을 시간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빛과 우주배경복사를 눈에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나? 빛은 그렇다치더라도 우주배경복사는 아니지 않는가.



여기서 내가 세공작업을 거쳐 만들어낸 개념의 기준은 조금 어설프지만 규칙이냐 대상이냐 였다.

시공간과 엔트로피는 규칙,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빛과 우주배경복사는 존재하는 대상, 눈에 보이는 것.



우주배경복사를 쓰려다보니 이걸 눈에 보이는 것 이라고 해도 되나 싶어서 기준을 다시 잡아보았다.



빅뱅 직후의 우주에서 양성자와 전자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온도가 높을 때는 그 성질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존재한다.

하지만 뜨거웠던 우주가 식으면서 3000켈빈 이하로 떨어지면 양성자와 전자가 서로 결합하면서 수소 원자를 만들게 된다.

여기서 수소 원자의 탄생 외에 재미있는 일이 발생한다.

자유로운 전자와 상호작용하던 빚이 더 이상 자유전자와 상호작용하지 못 해서 전자에 갇혀있던 빛이 우주에 퍼지는 일.

우주의 온도가 3000켈빈이 되었을 때, 빅뱅 이후 약 38만년 이후의 시점에 우주 전역에 퍼진 첫 번째 빛.

우주배경복사.



빅뱅 이후 우주가 어두웠다는 것도 신기한데 수고가 생겨나면서 퍼진 첫 빛이라니.

이 빛도 우주와 생명체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놀랍고 다행스러운 것은 이 우주배경복사가 우리의 시점으로 한참 과거의 일인 이 첫번째 빛이 아직도 우주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바로 빅뱅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1960년 펜지어스와 월슨이 폐기된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해낸, 하늘의 어디에나 존재하던 잡음.

그 잡음은 그 당시 과학자들이 계산해낸 약 5켈빈 정도의 온도가 되었을 우주배경복사의 온도와 거의 일치했다.

빅뱅 이후 우주 전역으로 뻗어나갔던 첫 빛이 폐기된 전파망원경의 잡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우주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아서 그곳을 탐구한다는 것은 때때로 과거보다는 현재를 탐구하는 것 같고,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주를 탐구한다는 것은 지구보다 더 오래 전 세상의 남아있는 흔적을 탐구하는 것.


마치 우주배경복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