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첫 관측
나는 언제부터 우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까?
우주를 좋아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과목 중에서는 지구과학을 가장 싫어했다. 아마 지리를 싫어했던 탓에 묘하게 겹치던 부분들이 싫었던 것 같다. 화석이나 지형 모양, 기후 등등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렇다고 천문 파트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별의 진화 과정은 재미있게 보았지만 별의 밝기 등급 같은 것에는 도통 흥미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지구가 속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호감 어린 마음은 있었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던 내가 본격적으로 우주를 파보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처음 별을 제대로 관측해 봤다는 기억이 있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전에도 천문관에 가본 기억은 있지만 별을 관측한 기억은 없다.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조금 특이하신 분이셨다. 가끔 생활한복을 입고 오시기도 하셨고 과학 동아리를 직접 만드시기도 하셨다. 동아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활동하는 것에 가끔 따라가서 해본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다.
확실한 건 그 선생님은 지구과학을 좋아하셨다는 점이었다. 그쪽 전공이신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수업하실 때 지구과학을 좋아하시는 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선생님이 중3 부분월식이 있었을 때 천체망원경으로 관측을 하시겠다고 구경을 오라고 하셔서 엄마랑 동생과 함께 운동장에 나갔었다. 코로나가 슬슬 시작할 때쯤이었는데 학교 친구들과 부모님들도 꽤 많이 왔던 것 같다.
그때는 부분월식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는데 그래서인지 부분월식보다는 다른 행성들을 본 것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우주를 사랑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토성, 관측했을 때 가장 매력적인 행성.
고리를 가진 행성인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차원이 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중3 부분월식 때 본 토성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뚜렷이 떠오르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때 고리가 뚜렷이 드러나는 토성을 보며 느낀 감정이 경이. 경이로움이었다.
우주를 보면서 느낀 첫 경이로움이 나에게는 토성의 고리였던 것이다.
월식은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토성, 토성의 고리.
토성의 고리가 뚜렷이 눈에 잡히던 그 순간만이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저렇게 크고 넓은 우주에 저 멀리 보이는 저 작고 밝은 점이 사실은 이렇게 생겼구나.
내가 상상도 못 할 거리에 있는 것을 내가 보고 있구나.
내가 저렇게 먼 곳에 있는 행성의 형태를 직접 보고 있는구나.
토성의 고리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기에 토성은 그저 밤하늘의 밝은 별일뿐이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그저 흰 점일 뿐인 토성이 고리를 가졌다는 것이 생생히 전달된다.
그것에서 오는 감정은 경이로움 외에 설명이 되지 않은 강한 벅참이었던 것 같다.
아쉬운 게 그때 내가 우주에 대한 기초상식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아직 달 표면이 찍히지 않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시기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는데, 적어도 그 망원경이 어떤 망원경인지 알았다면, 하다못해 망원경 사진이라도 찍어 놨다면 지금이라도 정보를 더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다행히 그때 망원경에 대고 찍은 사진들이 남아있다.
목성 사진이다. 줄무늬가 꽤 선명하게 보인다.
주위에 위성이 2개나 보이는 이 아름다운 천체가 안타깝게도 무엇인지 모르겠다.
부분월식 사진도 남아있다!
새삼 중학교 토성 관측을 떠올릴 때면 그 과학 선생님에 대해 떠오르는 시간인 것 같다.
공립 중학교에서 망원경을 가지고 관측을 하게 해 주신 그 선생님은 뭐 하시던 분이셨을까.
선생님에 대한 마지막 기억마저도 조금은 당황스럽고 특이하게 남아 있다.
마지막, 졸업하기 전 창체시간에 체육관에 있을 때, 그때 선생님이 담당 선생님이셨다.
단상 쪽에서 친구들과 있었는데 갑자기 다가오셔서 숙제 아닌 숙제를 하나 내주시고 가신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그때 숙제가 아침에 찍은 사진이라면서 구름이 왜 지면과 수평을 이루며 아래쪽에 깔려있는지 알아오라고 하셨다.
이렇게 구름이 아래로 깔린 모습이 신기하지 않느냐면서 힌트라면서 기단에 대해 배웠던 것에서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 후에 내가 바로 졸업을 하면서 답을 맞힐 기회는 없어졌고 내가 기후, 지리는 무관심했기에 대충 학습지를 들춰보고 시베리아 기단이(겨울이었다) 공기가 무겁겠거니 하고 답을 찾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께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억 덕분에 '그 선생님이 지구과학 선생님이셨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과학 중에서는 지구과학을 가장 좋아하시는 분이셨을 것이다.
지금도 선생님이 지구과학을 좋아하신다면 종종 학생들과 관측을 하겠지.
얼마 전 개기월식을 관측하셨을까. 아마 관측하셨을 것이다. 개기월식이 흔한 것도 아니고.
새벽에 한 것인데 학생들과 함께 하셨을까. 아니면 이번에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셨을까.
연락도 안 하는 사람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겠거니 생각할 수 있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토성 덕분에 내가 별을 보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선생님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
같은 날, 같은 우주를, 같은 달을 보며 경이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때 관측이 아니었다면 내가 선생님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야말로 우주가 연결해 준 인연이 아닐까.
우주로 연결되는 인연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
언젠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행사들을 관측하면서
그 인연들을 떠올리고 싶다.
'그 친구도, 그 선배도, 그 후배도, 그 선생님도 지금 이 우주를 보고 있겠지. 우주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니까.'
연락이 닿지 않아도 같은 우주를 보고 있다는 것으로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