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편
좋아하는 천체가 있는가?
좋아하는 천체가 있다는 건 기쁘면서도 따지고 보면 황당한 일이다.
그래봐야 겉보기에는 다 똑같은 밤하늘의 점이 아니던가.
평생 직접 가 볼 일도 없고 닿아볼 일도 없고. 그저 밤하늘에 떠있는 점일 뿐인데 그 점들 가운데 하나를 좋아한다니.
잘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그 점들 가운데 유독 빛나서 가슴속에 간직하는 하나의 점이 있나 보다.
언젠가 친구에게서 온 연락에 자신이 좋아하는 행성이 천왕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색이 아름다워서 시원해서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는 천왕성을 직접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도 그것이 좋다고 한다.
이게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우주에 대한 동경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가슴속에 간직한 천체는 토성이다.
우주을 관측한다는 사람들 중 특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라면 토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첫 관측, 실컷 선배(경험자)들이 보여주는 대로 별을 관측해 보지만 뭐가 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입장이라면
"이게 이 별이야!"
라고 외치는 선배들의 흥분한 말에도 다른 것과 구별하지 못해
"아하, 그렇구나...! 처음 봐요!" 밖에 못할 때가 있다.
그런 나라도 "우와! 토성이네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행성.
실컷 망원경을 조준해 봐도 "이거 맞아요?" 밖에 못하는 나에게
"와! 토성 제대로 맞혔어요!"를 외치게 해 줄 수 있는 행성.
무엇보다도 가장 첫 관측 나에게 경의의 충격과 함께 몇 년을 가슴에 묻고 살도록 해준 천체.
관측 활동을 하면 토성을 만날 일이 정말로 많다.
태양계 행성 중에서는 2번째로 큰 별이라 그런지 육안으로 봐도 잘 보이고 망원경으로 보면 황홀하고...
중학교 때 토성을 관측했던 나는 이 동아리에 들어오기 위해 3년을 토성을 가슴에 묻고 살았구나 싶다.
토성의 매력은 망원경으로 봤을 때 보이는 고리지만 추가해서 볼 때 옆에 보이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도 있다. 수많은 토성의 위성 중 가장 큰 위성, 타이탄.
토성을 알게 되고 관측하다가 빠져버린 천체 중 하나다. 망원경으로 볼 때 토성 옆에 예쁘게 빛나던 천체! 누가 봐도 '나 토성 위성이야!'를 외치며 옆에 묻어있는 아이다.
이 천체는 알아볼수록 신비로운 점이 가득한데, 우선 지구를 제외한 유일하게 액체가 있는 천체!라는 점이다.
태양계의 행성이 아닌 행성의 위성에 액체가 있다니.
물론 지구처럼 물이 아니라 에탄, 메탄 등의
액체 탄화수소지만 그것만으로도 신비롭다.
더구나 이곳에는 대기도 있어서 무려 구름, 비 등의 대기 활동도 일어난다.
나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곳에서는 놀랍게도 세포와 비슷한 것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한다.
... 내가 살아있을 때 무에서 유의 생명체 탄생을 볼 수 있게 되면 좋을 텐데... 타이탄 내재적 생명체들 분발해라...
타이탄에 대해 이렇게 알 수 있게 된 것은 2004년에 토성 궤도에 진입한 나사의 카시니 우주선 덕분이다.
카시니 우주선은 20년간 토성 연구와 더불어 토성의 위성까지 탐사한 후 마지막 최후의 순간, 굿바이 키스라고 불리는 최후의 임무로 토성의 대기를 느끼며 토성의 대기에서 산화했다.
다른 행성의 위성이라는 것은 재밌다. 영어로 위성은 moon이라고 많이 쓰인다.
우리에게 위성(moon)은 달인데, 토성에게도 위성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면서도 어색하고 재미있다.
황제(태양) 밑에 제후국(행성)들이 거느린 신하(위성)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쯤 되면 인간이 우주를 닮아가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역사의 무의식에 우주가 잠재되어 있나 보다. 어쩌면 우리가 우주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사로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하는 말인가..
토성의 고리는 각도에 따라 잘 보이는 시기가 있고 보이지 않는 시기가 있다.
함께 천체 관측 동아리를 하며 관측을 나간 천문학과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
"이제 몇 년(몇 십 년이었던가...) 뒤쯤 토성고리 잘 보이니까 그거 보고 이제 그다음에 이거(아마 월식이었던 것 같다.) 뜨니까 이거 보면 됨."
우주의 행사는 오랜 기다림 끝에 일어난다. 그러고 나서 대게 잠깐 했다가 사라진다.
느리게 천천히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변화가 없는 듯하면서도 변하는 우주를 관측하며 몇 년, 몇 십 년에 걸려 돌아올 행사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일어나는 그 순간,
이미 연락이 끊겨버렸을지도 모르는, 우주를 사랑한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우주를 함께 보고 있을 미래를 떠올리는 건 아직 한참 이른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즐거운 상상이다.
우주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기에. 한평생을 기다리며 관측할 수밖에 없으니.
그걸 기다리면서 일상을 사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이 글을 읽은 사람들 중 누구나 하나쯤 마음에 품은 천체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면 축복할 일이다.
먼 우주를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만약 없더라도 괜찮다.
우주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아무리 멀어도 언제나 밤하늘에 있으니까.
어느 날 하루, 하늘을 올려봤을 때 하나의 점이 마음에 들어올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