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글이니까 괜찮아요”

치매 환자 가족 에세이 수업에서

by 제라


[대야·신천] 3월 6.jpg

눈이 내리던 2월의 어느 수요일.

치매안심센터에서 돌봄 가족을 위한 에세이 수업이 열렸다.

눈길에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을까 걱정하며 센터에 도착했는데,

어르신들께서는 오히려 더 일찍 오셨다며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계셨다.


“내가 무슨 글을 써요.”

글쓰기 수업인지도 모르고 오신 분도 있었고,

“글을 책으로 만든다고요?”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하셨다.

“주무관님이 전화해서 그냥 왔는데, 글쓰기라니…”

그렇게 조심스럽게, 우리의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말하듯이 쓰시면 돼요.”

“말은 쉽지, 그게 말처럼 쉽나.”

웃음 속에서 첫 문장이 태어났다.

그날 어르신들은 두세 줄씩 짧고 조심스럽게 글을 써 내려갔다.


세 번째 수업 날, 70대 김금자(가명) 어르신은 수업에 오지 않으려 하셨다고 한다.

“나는 평생 가계부밖에 써 본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글을 너무 잘 쓰더라고요.

내 글을 보니 맞춤법도 엉망이고, 창피해서 딸한테 가기 싫다고 했더니

딸이 그러더라고요. ‘틀리면 어때, 엄마 글인데.’그래서 다시 오게 됐어요.”


그날, 금자 어르신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편을 유치원에 보냈다.”

짧은 문장이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어르신은 매 수업마다 한 줄씩, 두 줄씩 글을 썼다.

자신도 몰랐던 기억과 감정이 단어로 떠올랐다.


“예전엔 우리 부부가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른 어르신들도 하나둘씩 자신만의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남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고,

누군가는 자식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마음을 써 내려갔다.


나는 그저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은 글을 소리 내어 읽어드릴 뿐이었다.

그 시간이 쌓이자, 말보다 깊은 진심이 모였다.


마지막 수업 날, 우리는 어르신들의 글을 엮어 작은 책을 만들었다.

금자 어르신은 책을 들고 조심스레 웃으며 말했다.


“이거요… 제 손으로 만든 꽃다발 같아요.

내 인생도 참 괜찮았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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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 사람을 피어나게 할 줄 몰랐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단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잊고 있던 나를 다시 꺼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이 수업을 통해 깊이 느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믿는다.

글이 사람을 다시 피어나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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