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싫은 걸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닌데 그 이유는,

by 그라운드타이거

나는 한참 동안,

싫은 걸 좋다고 말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그런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도 학생회장을 했던 그 시절부터

이런 나의 모습을 명확히 보면서 살아왔다.


되돌아보면 한참 전부터 그랬을 테지만.



누군가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좋아요."

사실은 불편하고 억울한 상황인데도 "괜찮아요."


공동체 안에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대의를 위해 여러 가지 짐은

짊어지고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점은 동의하나,

감정을 숨기는 게 감당하는 방식이 아니란 걸

그 때는 몰랐지.


어쩌면 내가 그때 추구하고 싶었던 건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었다.


그 신념은 처음엔 도움이 됐다.

처음엔, 정말로.


직장에 들어와 1년 가까이 지내면서 깨달았다.

그런 믿음은, 첫인상까지만 유효했다는 걸.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특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는.


디자인은 논리적인 결과로 나타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내 개인의 욕망과 감정이다.

이게 왜 좋은지, 왜 아닌지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느낌에서 시작된다.


감정은 누구한테 보여줄지는 자유지만

나 자신은 먼저 똑바로 마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의 편의를 위해

내 감정을 속이는 행동은 독이다.


기존에 없던 걸 창조하는 행위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면서 시작한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것, 불편해하는 것을

뿌리로 시작되는 사고다.


디자이너는 본인의 취향과 섬세함도 중요하지만

그걸 똑바로 마주할 줄 아는지가 사고의 아웃풋을 결정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밖으로 빠져나오게 만드는 건

솔직함이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은

창피하거나, 나를 불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다른 사람의 머리로 들어가

새로운 사고의 씨앗이 된다.


그런 일들은 개인의 머리로

예상하거나 의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내 날것의 생각을 꺼내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게 나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게 하더라도.


이에 대해 나의 역할을 생색내고 싶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 좋은 영향을 받는다.


이런 요소를 알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나도 크게 솔직해지기 어렵다.


솔직해지기 어렵다기보다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내 감정을 말하지 않는 건, 사실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종종 공감을 오해했다.

조용히 들어주고, 따라주는 게 공감인 줄 알았다.

공감은 '같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내가 나의 감정을 명확히 알고,

그걸 나의 언어로 드러낼 때,

비로소 상대의 입장도 볼 수 있게 된다.


감정은 전략적으로 타인에게 숨길 수 있지만,

나에게까지 숨겨서는 안 된다.


나는 불편한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다.

실수했을 때는 그냥 인정한다.

눈치 보다가 흘려버린 내 감정을

더는 '기분 탓'이라거나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결국 나를 지켜주는 방법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게 내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