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다는 불편함
편한 사람 앞에선 말이 줄어든다.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있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좀 쉬고 싶어.” 같은 말도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냥 이야기할 뿐이다.
그 말에 무게를 실어야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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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온도 같은 것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아, 이 온도 괜찮다 싶으면
눈치 안 보고 그대로 눌러앉고 싶어지는,
편한 사람 앞에서는
눈치 보며 조율해야 하는 정체성이 줄어든다.
‘센스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지’
‘적당히 예의 있게 있어야지’
이런 조작된 태도가 느슨해진다.
나는 ’ 조작된 ‘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를 더 사용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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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편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렇다.
편하지 않은 사람은 이상하게 노력한다.
내가 웃지 않아도 웃기려 하고,
내가 조용히 있으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말을 건다.
그건 다름 아니라,
자신이 편하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은
내 기분을 좋게 해 주려는 게 아니라
내 기분을 잘 관찰한다.
무언가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인지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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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은 말에 여백을 둔다.
말을 늦게 한다는 건
속도가 느리다는 게 아니고,
내 말을 기다려준다는 의미다.
그런 사람 옆에선
고민이 줄고, 자책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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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사람을 웃게 하려는 사람보단
그냥, 웃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지나간 이야기, 이상한 말
웃고 넘어갈 수 있고,
“좀 그런가?”라고 말하면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주는
내 감정과 생각이
“마땅히 그럴만하다”라고 여겨지는 그 감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