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로젠
*작성일 : 2025년 6월 29일
나는 2017년 인스타그램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2016년 유학 생활 당시의 여행, 음식, 문화 등을 주변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호기롭게 인스타그램을 다운로드하였다. 수많은 도시 그리고 음식 사진들이 가득 찬 나의 피드를 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한편으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다수의 팔로워를 보유한 친구들의 계정을 염탐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즉, 인스타그램이 제공한 매개된 세상에서 인스타그램이 제공한 행복과 쾌락의 방식을 현실에 적용했고, 현실보다는 온라인상의 풍요로움이 나를 더 가득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귀국 후 피드를 장식할 새로운 이벤트가 줄고, 하루하루가 반복적으로 흘러가다 보니 인스타그램적 결핍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들을 보는 것이 힘들어지고, 어느덧 나의 현실과 타인의 가상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현실보다 나은 매개된 가상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서 바로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마치 회로가 설계된 로봇 마냥 사고에 있어 주체적이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진정으로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도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게시와 보여줌의 삶이 진짜 삶을 잡아먹으려는 시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그 가상의 세계에서 황급하게 뛰쳐나왔다.
애플리케이션 하나 지운 걸 가지고 무슨 혹성탈출의 서사처럼 묘사했지만, 이 책을 보면 그 이상의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경험의 종말은 더 이상 경험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경험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고, 우리의 경험의 방식을 효율성과 효과성의 기준하여 하나씩 바꿔 나가고 있다.
직접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볼 필요 없이,
구글 아트 프로젝트를 구매하여 내 침대에서 해당 작품을 1,000배씩 확대하며 볼 수 있다.
더 이상 영단어와 고전시를 달달 외울 필요도 없다. 지피티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와 시를 이미 다 외우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나에게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을 통해 느끼는 편하고 효율적인 경험들은, 해당 기술들의 사용을 늘리기 위한 기술기업들의 전략이었을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들 또한 모두 타인에 의해 인위적으로 유도된 것일 수 있다. 내가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닌, 시키는 대로 경험하며 느끼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캐나다 벤프에 가면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엄청난 자연경관을 직접 볼 수 있다. SNS가 없던 시절, 이 경치를 즐기는 주체는 나 자신이며, 이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주체 또한 나이다. 그 순간에 느끼는 만족감이 상당하며 같이 즐기는 사람들과 그 감동을 공유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우리의 경험과 행복의 방식을 새로이 정해주었다. 일단 좋은 것을 보며 감탄하기 전에 휴대폰부터 꺼낸다. 그리고 그 광활한 경치를 앞에 두고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기 바쁘다. 업로드가 완료된 후 올라가는 하트와 좋아요를 봐야, 그제야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낀다. 눈앞에 있는 수 억년 된 로키 산맥도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본다면 다소 뻘쭘할 것 같다.
요즘 라이브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달라졌다. 눈앞에서 가수들이 멋진 노래와 춤을 선보일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무대를 두 눈으로 감상하지 않는다. 모두 휴대폰을 꺼내 무대를 촬영하며 작은 휴대폰 액정을 통해 무대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카메라 감독이 된 것 마냥 최대한 무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각도에만 신경을 쓴다. 그리고 그날 밤 SNS에는 해당 공연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공유 횟수와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저자는 빠른 속도로 고도화되는 기술의 바닷속에서,
우리는 경험과 소비방식에 있어 그 주체성과 인감성을 잃지 말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순순히 기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
아무리 SNS가 업로드의 행복을 권유하고, 또 구글이 실제 미술관 방문이 불필요하다고 말해도,
인간은 그 진정성에 자체적으로 물음을 던지고, 그 경험의 소비방식과 행복을 느끼는 기준을 주체적으로 세우고자 노력한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의 사고와 행동에 있어 주체성이 떨어진다고 느끼고 바로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항상 기술에 종속되어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체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기술의 진보와 발전은 인간 삶의 영원한 수단일 뿐, 그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그 접근가능성의 향상은 경계의 대상이 아닌, 마땅히 환영받아야 하는 손님이다.
왜냐하면 이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경험의 확대와 확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더 많은 아이들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AR/VR 기술을 활용하면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교육 내용을 접하고 익힐 수 있다. 즉 기술의 발전과 전파는 교육의 평등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실시간 공유 및 업로드 기술은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역할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전이라면 큰돈과 긴 시간을 들여야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단 5초의 로딩이면 눈앞에서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이는 어떠한 비교될 것이 아닌, 절대적인 효익을 갖는 행복이다.
결국 주체성과 인간다움이라는 기준을 공고히 하며 첨단화되는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첫 번째이고 기술은 그 다음이다.
나와 내 삶을 풍요롭고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취하고,
내 삶의 방향성을 임의로 바꾸고자 하는 기술을 버리면 된다.
따라서 기술에 있어서 비판적 사고와 태도를 가지되,
내 삶과 세상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기술은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양가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