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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혼모노

성해나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6월 15일


오랜만에 대학교 후배의 안부 인사가 왔다.


잘 지내? 별일 없지?

응, 요즘 뭐 일, 운동 일, 운동… 반복이지, 너는?

나도 요즘 일 말고는 딱히?

요즘은 무슨 책 읽어? 너가 추천한 책은 항상 성공이었거든.

요즘 혼모노라는 소설 보는데 나쁘지 않아.


총 7개의 단편이 묶여 있는 소설집으로,

그중 두 개의 소설이 나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건축가 여재화는 유신정권 당시 국가로부터 대공분실 건축을 의뢰받는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를 진행해야 하지만, 그 시설의 목적과 용도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는 선뜻 마음을 다 잡기가 어렵다.


일단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줄 조수를 찾아야 했고,

제자 중 재능도 두각도 그리고 자기주장도 뚜렷하지 않은 구보승에게 이를 부탁하게 된다.


고문받을 이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증설한 시설이자 취조를 해도 실토하지 않는 이들이 최후로 방문하는 밀실. 그것이 내무부 장관이 여재화에게 발주한 증축 공간의 실체였다. – 176 페이지


마음이 쓰이던 여재화는 결국 구보승에게 발주 건축물의 목적과 의미를 실토한다.

그러나 구보승은 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다.


제 생각에, 이 공간엔 창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조사자가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고 자칫 비명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기잖습니까. - 181페이지


구보승은 대공분실의 목적에 맞게 설계를 하고자 여재화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여재화는 이에 상당히 당황하며, 이를 완전히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재화는 항상 인간을 위한 건축을 주장했고, 이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구보승은 이를 철저하게 지키며 성장했고, 이 또한 인간을 위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제자가 세상 무시무시한 설계를 하며 이를 인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여재화는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살짝 무섭게 느끼기도 한다.


아니야. 여긴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야. 난… 그런 걸 가르친 적 없어. – 193 페이지


결국 건축물은 의뢰의 목적에 맞게, 구보승의 설계 방식으로 완성되어,

그 악랄한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방향으로 완공된다.

여재화는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최종 설계자를 구보승으로 지정한다.


1980년 완공. 1983년 증축. 그 말미에 내무부 장관의 이름과 함께 설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구보승. 남자는 정초석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린다. – 199 페이지


사실 둘 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이 고문인인지 피고문인인지에 따라 그 설계가 180도 바뀌어야 한다.

여재화는 피고문인이라는 인간의 입장에서, 구보승은 고문인이라는 인간의 입장에서 건축을 바라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둘 다 인간을 위한 건축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직업소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직업적 행위에 윤리적 가치판단을 개입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기준이 돈이라면 돈을 따라 일하면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인한 산출물의 실제 용도와 그로 인한 미래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여재화의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 함은,

고문과 살인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가진 인간을 위한 건축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잉태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고부간의 갈등이 아닌,

며느리와 시부와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합리적이며 자기주장이 명확한 MZ 며느리와,

보수적이고 토속적이며, 항상 비아냥거리는 말투의 시부는,

화자의 딸인 서진의 탄생과 함께 그 본격적인 갈등을 만들어 나간다.


그건 우리 아빠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아닌가? - 271 페이지


사실 이 갈등이 심화되는 원인은 그 둘 사이의 남편과 시모에게도 있다.

항상 아버지에게 기죽어 사는 남편, 그리고 갈등 상황에서 회피만 하는 시모.

글을 읽으며 사실 가장 답답한 인물은 이 둘이었다.


시부와 나 사이에 시비가 붙을 때면 시모는 방에 숨어 있다 갈등이 종식된 뒤에야 슬그머니 나오곤 했다. 그녀는 누구의 편에 서거나 누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지 않았다. - 272 페이지


자신의 딸 서진을 이중국적으로 만들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시부의 반대와 훼방으로 결국 한국에서 딸을 키우게 된 화자는,

서진의 아들은 기필코 미국에서 낳아 키우고자 염원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서진을 비행기 태워 보내려는 순간,

시부가 공항에 등장하여 또다시 만류와 방해를 시작한다.


너는 불똥이 왜 복이 쪽으로 튀냐며 시부가 윽박지른다. 지지 않고 소리친다. 다 당신 때문인 것 모르냐고, 당신이 내 자리를 탐해서, 내 사랑까지 앗아가서... 논쟁은 금세 폭언으로 뒤바뀐다. 그때는 그랬고, 이때는 이랬고. 오랜 과거사까지 빠짐없이 끄집어내어 그와 나는 번갈아 가며 서로를 찌른다. 치졸하게. 아주 치졸하게. - 295 페이지


그간 쌓여왔던 분노와 울분으로 인해

만삭인 서진을 앞에 두고 시부와 화자는 격렬하게 다투고 부딪힌다.

그 사이 서진은 출혈하며 쓰러진다.


우리나라의 단골 주제인 고부간의 갈등은,

특히 <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도 많이 접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안의 더 복합적인 갈등의 모습들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일단 자식에 대한 지나치게 과분한 사랑과 이로 인한 통제이다.

시부와 화자 모두 자신의 결핍을 자식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또한, 내가 자식에게 느끼는 결핍은 그 자식의 자식에게서 채우고자 한다.


따라서 화자의 시부의 갈등의 원인은 항상 서진이며,

그녀에 대한 통제의 주권을 갖기 위해, 즉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계속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당사자인 서진만 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사랑과 보호 그리고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립과 주권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서진은 나이만 먹었을 뿐 아직도 미성숙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딱 맞는 형식과 양식,

기승전결과 완전한 끝마무리.

이 소설들의 구성은 위의 규칙들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며 일상적이라고 느껴졌고,

나 또한 어떤 규칙과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내용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는 되려 우리 인생의 방식과 더 닮았다고 생각한다.

예상은 빗나가고 계획은 틀어지며 언제나 변수와 이슈의 반복이다.

그렇다면 성해나의 소설들은 모두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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