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작성일 : 2025년 8월 17일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많은 기부와 봉사 그리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오신 김장하 선생님의 일대기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젊은 세대가 진정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또한 종국적으로 닮고 싶은 ‘어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항상 자신은 최대한 숨기고 겸손하되,
자신의 지역과 사회를 밝고 공평하게 만들고자 하는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는,
최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려 하는 나에게
잠시 멈춰 지금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김장하는 1992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훈장 모란장 서훈을 받게 되었는데 전수식 참석을 거부하여 경남교육청이 난리가 났다. 속내는 노태우 군사정권이 주는 훈장이 달갑지 않아서였는지 모르나, 그때부터 표면적인 거부 이유는 ‘약방을 비울 수 없어서’였다. 당시 관선교육감이 ‘내 목이 날아간다’며 사정사정하는 통에 결국 참석은 했으나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다. – 80 페이지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100개는 넘에 나온다. 좋은 일은 참으로 많이 했지만, 자신의 모습은 항상 숨기고 감추려 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뿌듯함과 강한 자존감에 자신의 공로를 치하할 텐데 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드러내고 더 잘 보일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이다.
다른 한약방보다 두 배, 세 배는 되었겠네. 세 배는 되겠네. 직원들도 우리 월급이 다른 데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야간수당이니 그런 개념이 전혀 없었죠. 아침은 각자 집에서 먹고 오지만 점심 저녁은 여기서 다 해결하고. – 83 페이지
김장하의 한약방에서의 직원 급여 관련 이야기이다. 산업화 시기 최소임금 최대효율이 경영의 바이블이 되어가던 시절, 남성당한약방은 그 반대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최근 읽은 ‘규칙 없음’의 넷플릭스의 창업주 리드 헤이스팅스의 HR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다. 인재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사보다 기본급을 올려줘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김장하는 이를 몇 십 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그의 한약방의 인재밀도는 진주의 그 어떤 한약방보다 촘촘해졌고, 이는 그의 기부 활동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역시 잘되는 집들은 다 큰 줄기가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문 재판관은 태도나 말투, 자세 등에서 느껴지는 풍모가 김장하 선생과 많이 닮았다. 늘 책을 가까이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는 모습도 같다. 다만 그는 선생과 달리 읽은 책에 대한 짧은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는데, 2006년부터 지금까지 쓴 독후감이 1,330여 편에 이른다. 헌법재판관이 된 후에도 매월 4~5권의 책을 읽고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 133 페이지
우리가 잘 아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또한 김장하의 장학생 중 한 명이다. 최근 대통령 탄핵과 관련하여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분이다.
김장하 선생과 같게,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 책을 가까이하고, 계속적으로 습득하고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지게 보인다. 그에게 붙은 타이들인 서울대, 사법고시, 헌법재판관…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잘 나가는 간판은 다 가지신 분이 저렇게 겸손하게 생각하실 수 있다니. 하루하루 어떻게든 내 잘난 맛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문 판사님과 내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읽고 그에 대한 소감을 기록하는 행위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새삼 느껴진다.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 137 페이지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의 청문회 당시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다. 정말 멋진 말인 것 같아 여러 번 읽어본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김장하의 사회공헌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돈은 원래부터 사회의 것이고, 이는 결국 공정한 방식을 통해 사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가 한 수많은 기부와 지원 활동은 결국 원래 그렇게 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사회로 전한 기부는 당연한 것이며,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 (예, 문형배 판사)은 똑같이 자신이 외부로부터 얻은 것들을 다시 사회로 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 방식은 돈이 될 수도, 지식의 전달이 될 수도, 육체적 노동이 될 수도 있다.
다들 내가 번 돈, 내가 아는 지식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유한다. ‘내가 잘나서 번 돈인데, 누가 뭐라 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든 무의 상태로 태어나 결국 그 주변과 사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 배워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사회로부터 입은 혜택과 효익은, 그 전부까지는 못하더라도 일정 부분 되돌려주는 것이 맞다. 그래야 또 나 같은 사람들이 어떠한 경제적 지원과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사회가 선순환하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특출 난 게 아니다. 그 선순환의 굴레 속의 하나의 역할을 한 뿐인 것이다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 즉,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 198 페이지
김장하의 명신고등학교 설립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그는 가난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다. 교육은 가난과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다. 김장하 또한 이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또한, 자신의 무지에 대한 결핍을 후배들은 겪게 하지 않고자 학교 설립을 결심한 것이다.
다음은 수익에 대한 철학이다. 우리나라 모든 의료 업게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비단 의료뿐만 아니라, 결국 남의 돈을 버는 직업이라면 그 이윤을 어떤 방식으로 쓸지 생각하는 김장하의 태도를 어느 정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이다.
나는 그런 것 못 느꼈어. 돈에 대한 개념도 그렇게 애착이 없었고, 그리고 재물은 내 돈이다는 생각이 안 들고 언젠가 사회로 다시 돌아갈 돈이고 잠시 내가 위탁받았을 뿐이다. 그 생각뿐이야. 이왕 사회로 돌아갈 돈인 바에야 보람 있게 돌려줘보자 그런 거지. – 322 페이지
결국 사회 공헌과 환원은 곧 사회로부터 진 빚을 갚는다는 개념인 것 같다. 매일같이 돈, 돈만 외치며 사업과 수익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 있는 나에게, 잠시나마 해방감을 선사하는 대목이다. 돈을 외치는 이유는 그 돈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고, 이는 다시 나 자신에게 투자되어 더 큰돈을 갈구할 것이다. 그렇게 돈의 노예가 되어 가는 찰나에, 김장하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이다.
‘사회가 너에게 빌려준 돈을 왜 네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음은 강호진 촬영감독이 국수를 좋아한다는 김장하 선생에게 우리밀 국수를 드린다는 핑계로 댁을 방문했다가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말 한마디를 청해 받은 게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었다.
“인불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즉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생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 350 페이지
항상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려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말로 느껴진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함에 있어 그 본원적 이유는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 남의 의도나 그 반응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중심이 흔들리고 상황마다 그 행태가 달라질 수 있다. 나만의 올바른 방향을 잡고 외부와 관계없이 이를 고집하며 이끌어가는 힘, 뭔가 나에게 큰 자극을 주는 말이어서 인용해 보았다.
요즘 상업적이고 세속적인 일에만 몰두하고 있던 시점에,
그 복잡함에서 한 발짝 떨어져 전체를 되돌아보는 느낌의 독서였다.
여러 채널을 통해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세잇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본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