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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8월 18일


최근 책 읽는 방식을 조금 바꿔봤다.


한때 독서가 어색하던 시절, 즉 책을 한 권 한 권 독파하는 재미가 있던 시절,

한 권을 쥐면 재미가 있던 없던 끝까지 읽어내려 했다.


그러나 근래부터 여러 장르의 책을 병렬로 읽기 시작했고,

심지어 잘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히 덮고 다른 책을 펼치기도 했다.

즉, 뭔가 강박 속에서 공부하듯 책을 보려 했던 관념이 다소 흐려진 느낌이다.


그리고 그 병렬 독서 리스트에는 항상 소설이 한 권씩 포함되어 있다.

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 속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지금의 현생에서의 번뇌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도 유명해서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았고,

유아독존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다사다난한 생애를 지켜보며,

뭔지 모를 해방감과 해소감이 느껴졌고,

되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나도 그런 삶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잘 정돈된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내 혈기는 좀 더… (중략) 내 마음속에는 더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미지의 세계가 주는 흥분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험한 암초와 무서운 여울도 헤쳐 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 40 페이지

이 소설은 1인칭의 제 3자 ‘나’의 입장에서 기상천외한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일생을 다룬다. 이는 3인칭 시점보다 어떻게 보면 더 현실적이고 주인공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나’는 주인공에 비해 평범하고, 사회가 허락하는 가이드 안에서 사고하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스트릭랜드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격하고 비이상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스트릭랜드로부터 묘한 매력과 쾌감을 느끼며 그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하고 교류한다.


이는 <위대한 게츠비>의 서사와 비슷한 것 같다. 평범한 1인칭의 화자를 통해 소설 속의 상황과 맥락에 더 잘 몰입할 수 있고, 누구보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화자는 마치 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한참 동안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자가 돌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아주 젊었고 상대방은 내게 중년으로 보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딴 건 몰라도 몹시 놀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 73 페이지

본격적인 전개 및 갈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이전까지는 ‘무슨 반전이 있으려고 이렇게 서사가 길까…’하며 조금은 지루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성공한 한 남자의 파격적인 결정이다. 갑자기 그림이라니. 혹자는 철이 없다고, 다른 이는 외도의 핑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모두 그들의 상식 선의 착각이다. 스트릭랜드의 비범한 행보는 이미 시작되었고, 독자는 강한 몰입감을 가지고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읽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 211 페이지

아름답다는 형용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아름답다는 개인이 주관적 느낌이기 때문에,

공동의 어떤 합의를 이끌기 위함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사용 및 기술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너무 모든 것에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말의 힘이 떨어진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 표현은 그보다는 더 특별한, 어떤 특정 상황이다 대상에 쓰여야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어휘를 대체할 만한 적절한 다른 단어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어떤 표현이나 어휘에 있어, 그 본연의 뜻을 더 진중하게 사용하려는 자세,

요즘은 그런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여자들이란 사랑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사랑을 터무니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더러 그게 인생의 전부인 양 믿게 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건 하찮은 부분이야. 나도 관능을 알지. 그건 정상적이고 건강해요. 하지만 사랑은 병이야. 내게 여자들이란 쾌락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아. 나는 여자들이 인생의 내조자니, 동반자니, 반려자니 하는 식으로 우기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 – 224 페이지

스트릭랜드의 사랑 그리고 그 대상인 여성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자로서 어쩔 수 없이 해소해야 하는 성욕을 채워주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와 집단이 만든 어떤 공동의 도덕성과 윤리를 완전히 벗어나 행동하는 그를 봤을 때, 그 배경에 어떤 관념들이 존재했는지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물론 나는 사랑의 위대함 그리고 영원한 반려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스트릭랜드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바이다.


방바닥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사방의 벽이 기이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는 숨이 막혔다.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는 감정이 그를 가득 채웠다.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다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 323 페이지

화자가 스트릭랜드의 죽음 후 그의 집 벽에 그려진 그의 마지막 작품을 보며 감탄하는 대목이다.

앞서 ‘아름답다’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고 다채롭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트릭랜드는 작가 폴 고갱을 밴치마킹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따라서 구글 속 고갱의 그림 중 위 벽화에 가장 상응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고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찾았고, 이 그림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달은 이상을 6펜스라는 화폐는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현실에서 벗어나 독단적으로 이상을 좇는 주인공,

바로 스트릭랜드의 이런 양가적인 인생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닐까?


확실히 고전은 현대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잔잔하지만 깊은 맛이 있다.

순간순간의 자극적인 재미는 덜하지만,

뭔가 종종 찾게 되는 그런 마성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고갱 전시와 타히티 또한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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