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나는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날도 책을 잔뜩 쌓아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울린 전화벨.
복도로 뛰어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강우랑 같은 중학교 다니는 이민준 엄마인데요.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어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모르는 번호,
기억나지 않는 엄마,
그리고 갑자기 걸려온 전화.
우리 강우가 설마…
학폭이라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 엄마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갑자기 전화드려서 놀라셨죠?
민준이랑 강우가 6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공개수업 때 한번 뵀을 거예요.
중학교도 같아져서…
언제 커피 한잔 하자고
연락드렸어요.”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사춘기라는 시간이 시작된 뒤로
나는 늘 이렇게 불안하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엄마인 나조차 알 수 없으니까.
기억을 못 해 죄송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 엄마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강우, 이번에 2학년 몇 반 됐어요?
오늘 홈페이지에 반배정 나왔더라고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종업식 날,
친한 친구랑 같은 반이 안 됐다며
투덜거리던 강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강우한테 다시 물어봐야겠어요.”
잠깐의 정적...
“강우야, 너 몇 반 됐어?”
“친구 누구랑 같은 반이야?”
이렇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엄마 좀 나가줄래?”
“그거 알아서 뭐 하려고?”
더 묻지 못하게 만드는 말투.
대화의 문이 닫히는 소리.
그걸 다른 엄마에게
솔직히 말할 수는 없었다.
“어머, 강우는 혼자서도 잘하나 봐요.
우리 애는 아직 애기 같아서
제가 다 챙겨줘야 하거든요.”
부드러운 말이었지만
어쩐지 내 가슴 한쪽이 찔렸다.
아들 하나인데… 너무 무심한
엄마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괜히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방학 때 특강 뭐 들었어요?
우리 민준이는 영어 문법이랑
컴퓨터 특강 들었어요.
컴퓨터를 워낙 좋아해서요.”
“…아, 특강이요?
우리 강우는... 그런 거 안 들어요...”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강우에게
“이런 수업 한번 들어볼래?”
조심스럽게 물으면
대답은 늘 하나였다.
“내가 알아서 할게.”
강우는
도움을 거절하는 아이였다.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스스로 찾아보고,
학원도 직접 고르고,
계획도 혼자 세웠다.
처음엔 대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독립심이
나를 조금씩 조금씩..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형식적인 약속처럼
“다음에 꼭 커피 한잔해요.”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통화를 마친 뒤에도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엄마가 아니었다.
아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에도 함께 웃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묻지 않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대답하지 않을 걸 아니까.
어차피 대화가 막힐 걸 아니까.
방 문 앞에서
몇 번이나 노크를 망설이다 돌아서는 엄마.
까칠한 사춘기 아들을 키우며
나는 조금씩 말수가 적어졌고
덜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짜준 계획표대로 학원에 다니고
아직도 엄마 손을 잡고 걷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괜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정답은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도 가끔은
묻고 싶어진다.
잘 크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독립적인 아들이
언젠가는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의 자리는
조금씩 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줄까
하는 기대를 안고..
혹시 여러분도 아들 키우면서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언제부터 엄마는 이렇게
말수가 줄어들게 된걸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