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독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져
밖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던 밤.
그런 날,
강우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지금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무렵은
사춘기가 가장 날카로웠던 시기였다.
사춘기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마치
살얼음판 위를 맨발로 걷는 일 같았다.
어디가 약한지 모르고,
언제 깨질지 모르고,
한 번 금이 가면
걷고 있던 사람도
함께 빠져버리는.
곧 남편이 퇴근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우야, 저녁 먹자.
얼른 나와.”
대답은 없었다.
잠시 후,
방문과 벽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소리는 점점 커졌고,
이웃집까지 들릴 것 같은 소음이 되었다.
참다못한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최강우! 이리 와!”
하지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화가 난 남편은
문을 벌컥 열고
아이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화나면 말로 해야지!
문을 발로 차면 어쩌자는 거야!”
그 순간,
강우는 이미 한계였다.
“아, 씨…
안 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나 좀 건들지 말라고~!씨”
그 말에
남편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 새끼가 지금 아빠한테 뭐라 해?
쟤 버릇 고칠 때까지 밥도 주지 마라.”
그때,
강우가 내뱉은 말.
“어차피 굶겨 죽일 거면
나 이 집에 있을 이유도 없네.”
그리고 문을 쾅 닫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티셔츠에 체육복 바지.
맨발에 슬리퍼.
영하 8도의 밤으로,
아이는 그렇게 나가버렸다.
그 뒤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읽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강우의
첫 가출이었다.
그 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추운 날,
발은 얼어붙지 않았을지.
돈도 없이 나갔는데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혹시,
어디서 울고 있지는 않을지.
상상은 끝없이
더 나쁜 쪽으로만 흘러갔다.
불안은 기도가 되었고,
기도는 눈물이 되었다.
“강우야…
엄마 전화 좀 받아.
너무 걱정된다.
이제 그만 들어와.”
그 문자를 보내고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그 소리는 그날 내가 들은
가장 고마운 소리였다.
문이 열리고 강우가 들어왔다.
남편이 아이를 부르려는 순간,
나는 남편을 말렸다.
“지금은 아니야.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이야기하자.”
그날 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모든 기운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우야..어제..어디 갔다 왔어?”
강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하철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몇 번 왔다 갔다 했어.”
그날의 가출은
집을 떠난 게 아니라,
마음 둘 곳을 몰라
도시를 빙빙 돌던
한 아이의 고독한 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춘기의 가출은
반항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조용한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날,
영하 8도의 밤보다
더 차가웠던 건
아이의 마음이었고,
그 아이를 품지 못한
엄마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