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의콘파냐 Sep 26. 2024

엄마가 잘 먹어서 미안한 요즘

먹는 즐거움을 잊어야 하는 적응

일정상 서울 호텔에서 1박 2일을 하게 되었는데 둘째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혼자 집에 있겠단다. 실랑이해도 꿈 쩍 안 할 아이라는 걸 알기에 실랑이하고 싶은 에너지도 없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두려 했는데 아빠의 마음은 다르다. 절대 집에 혼자 둘 수 없다며 어떻게든 데려가려는 아빠와 결심한 걸 굽힐 의지가 없는 딸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공동양육자로서 나도 한편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아빠의 편에 서서 말을 보탰더니 딸이 더 난리다. 결국 그렇게 억지로 실어 나르듯 둘째를 겨우 태워서 호텔에 왔고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잠옷입은 채로 온 아이는 호텔방 책상에 자리 잡고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을 양보하듯 슬며시 남편과 나와서 주변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옷가게를 발견해서 막 입어보려는 찰나에 큰 딸한테서 화상 전화가 왔다. 늘 우리의 우선순위는 그녀의 전화이기에! 들었던 옷 그대로 옷걸이에 걸어두고 가게를 나왔다. 야외 벤치에 앉아서 남편과 나란히 에어팟 한 개씩을 나눠끼고 경청을 이어갔다. 캠핑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는데 한국이 아니라 기숙사로 돌아가도 싶다는 말이라 순간 다행이다가 생각보다 힘들겠구나 싶은 마음에 속으로는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덤덤하게

"극기훈련 콘셉트인가 봐. 나름 고생스럽긴 해도 이것도 추억이니까."

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 안쓰러움을 꾹꾹 눌러둔다. 그래도 아이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엄마 저 잘 견디고 있어요. 괜찮아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알기에 엄마인 나도 최대한 덤덤하게 들어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첫날 저녁은 삶은 감자, 통조림 베이크드빈 정도였고 다음날 아침은 시리얼, 구운 토스트 정도여서 캠핑장 시설상 요리가 힘들어 음식이 간단한가 보다. 침대도 2층이 아니라 3층구조라 눕기만 가능한 수준인데 다들 3층을 회피해서 아이가 자진해서 쓰겠다고 했다고. 뜨거운 물도 아껴 써야 한다는 등... 그나마 4박 5일이라 다행이다 싶고 오는 주말에 친구들과 나가서 맛있는 외식 하라고 위로해 줄 뿐. 그렇게 아이와 통화를 끝내고 객실에 혼자 있을 둘째 저녁을 사다 주려는데 카톡으로 연신 음식 사진을 보내도 계속 거절이다. 결국 닭강정에 오케이 사인을 받고 기분 달래줄 공차 한잔 포장하면서 마음 한편이 무겁다.

큰딸이었으면 호텔 가자고 하면 신이 나서 따라나섰을 텐데... 쇼핑몰 구경 가자고 하면 팔짱 끼고 다니면서 너무 좋아했을 텐데...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 저녁 먹어요" 하면서 사진이 올려져 있다.

저 네모가 뭐니 물었더니 피자란다. 마르고 성의 없는 냉동피자스러운 음식인데... 나름 전날 음식보다 나아진듯하다.

남편이 일정상 먼저 가서 둘째와 둘이서 3인분을 먹어야 하는데 하필 큰아이가 올린 냉동피자 사진에 또 울컥한다. 우리 집 최고 미식가인데, 맛있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남다른 아이인데, 집에서는 절대 안 먹였을 레코르트, 인스턴트 음식들에 탄수화물 덩어리로 연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속상하다.

제대로 못 먹고 있는 아이가 걱정되는데 또 우리는 너무 잘 먹고 있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떨어져 있다는 게 이럴 때 너무 실감이 되는데... 앞으로 이런 날들이 계속 더 남아있다는 게 더 절망적이다.


작가의 이전글 익숙하지 않은 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