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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루미 Aug 26. 2022

요술방망이

마케팅 바닥 생존기

– 오후 5시 50분,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


“전화 받았습니다. 홍길동입니다?”

“길동 매니저님~호호호”

“네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상부 보고를 했는데, 시안을 좀 수정해야 될 것 같아요.

 좀 더 감성적인 느낌으로 가능할까요? 근데 너무 잔잔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컬러는 지금보다 좀 더 다채롭게 써 주시되 정신없지 않도록 잘 해봐 주세요.”

“확인했습니다. 혹시 완성본은 언제까지 드려야 할까요?”

“내일 오전 중으로 부탁드릴게요~”


– 시곗바늘이 여섯 시 정각을 가리킨다. –



 위 스크립트를 보고 홍길동의 직업을 유추해 보시오. 그렇다. 현실 세계에서 홍길동 역을 맡고 있는 나의 직업은 광고대행사 마케터다. 굳이 칭하자면 마케터 중에서도 ‘AE(Account Executive)’. 영어로 이루어진 약어가 뿜어내는 묘한 느낌 탓에 아직도 AE라는 단어가 낯설고, 나 자신을 AE라고 소개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느끼한 공기가 감도는 기분이다. 하지만 직업을 바꾸지 않는 이상 어찌할 도리 없이 나는 AE가 맞다. 그리고 이런 통화가 부지기수라는 것도 슬프지만 팩트다.


 AE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광고 회사나 홍보대행사의 직원으로서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클라이언트의 광고계획이나 홍보계획을 수립하고 광고나 홍보활동을 지휘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뭐, 구구절절 흠잡을 곳 없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에게 AE가 뭐냐고 묻는다면, 사전적 정의가 아닌 나만의 자전적 정의로 요령껏 답변할 작정이다. “AE란 밥이 됐든 죽이 됐든 일단 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AE의 풀네임이 사실 Aㅏ, Eㅣ게 되네? 랍니다.”라고 시답잖은 사족을 덧붙일 수 있다면 베스트다. 진담 반 농담 반이긴 해도 내가 생각하는 AE란, 어떤 요청이건 적절히 반영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완성시켜 내야 하는 사람임은 틀림없다.



 조금 더 실무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AE의 주된 업무는 이러하다. 외부에 있는 클라이언트클라이언트의 상사, 그리고 클라이언트 상사의 상사의 의견(운이 좋지 않은 경우 대표님 선까지 올라갈 때도 있다.)을 듣는다. 한 편, 함께 일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도 듣는다. 외부 클라이언트의 의견만큼이나 내부 의견도 빈틈없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의견들을 수렴하여 양측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외부 클라이언트도 실망하지 않고 내부 구성원도 지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게 포인트다. 이처럼, 참된 AE라면 지극히 작은 프로젝트일지라도 나름대로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의 중추이자 AE인 내 어깨에는 늘상 300g 정도의 부담감이 살포시 앉아있다. (그래서인지 연차가 쌓일수록 어깨가 뻐근해 온다.)


 아무튼, 앞서 말한 설득과 조율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해와 파악이다. 당연스러운 이치 같지만 이해와 파악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하나도 당연스럽지가 않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디자인과 개발이 포함되어 있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지만 디자인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개발자가 아니지만 개발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일러스트 툴을 다뤄야 한다거나 코딩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절 그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 즉 디자인과 개발에 투입되는 자원과 프로세스, 일정 등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나의 전문 분야가 아닐지라도 능통해야 한다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야 할 AE의 숙명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AE라는 직업은 어떻게 보면 요술방망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얍! 하고 휘두르면 뾰로롱~ 뭐든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어떤 요구사항이든 간에 전문가처럼 능통하게 들어주어야 하는 것. 이게 걸어다니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면 뭐냔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요술방망이처럼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휘두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바지런히 노력하기 때문인 듯하다. 가끔은 누굴 위해 이렇게 열심인가 허탈할 때도 있지만 막상 해내고 나면 ‘아,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였구나’ 소소한 위안이 뒤따른다. 어릴 적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싶어하던 기억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2n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 요술방망이 본인이라니, 역시 인생은 요지경이다.



 오늘도 나는 요술방망이가 되어 휘황찬란한 모니터 불빛과 타닥타닥 리드미컬한 키보드 효과음을 뿜어내며 무엇이든 되게 만든다. 매일 그렇게 각기 다른 형태의 작은 요술을 부린다. 어떤 날은 요술방망이의 배터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질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나 스스로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을. (이라고 말하지만 아주 가끔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


 길다면 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케터로 살았으니 이제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더라도 익숙하고 쉽겠지, 헛된 기대를 품고 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껏 나에게 주어졌던 미션들은 늘 새롭고 어려운 것투성이다. 그 상황이 되면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의심을 먼저 하게 된다. 특히나 저연차 때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허둥지둥거리는 게 그 다음 스텝이었다. 나름 고연차가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마치 호수 밑에서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허우적대지만 호수 위에서는 유유자적 떠다니는 백조처럼.



 늘상 그렇듯 출근을 하면 마음 속 한 켠에 놓아둔 요술방망이의 스위치를 켠다. 그리곤 어려운 미션이 주어지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정의내린 AE의 약어를 믿는다. 믿고 해낸다. ‘Aㅏ, 오늘도 Eㅣ게 되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이다.



이 자리를 빌려 전국에 계신 클라이언트 분들께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제가 요술방망이도 아니고 자꾸 이렇게 휘두르시면 진짜.. 뾰로롱~✨ (짠)




*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 (Artem Malts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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