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꼬새와 두뇌 싸움 신정자
ㆍ4개월 전 우연히 지인에게서 잉꼬 한쌍을 분양받았다. 오래전 딸네에 있던 잉꼬는 한 마리여서 인지 사람과 식구처럼 잘 지낸 경험이 있어서 분양했으나, 어린 새들이 아니어서 인지 아니면 의지할 상대가 있어서 인지 도무지 곁을 주질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배변은 물론 종이든 음식물이든 닥치는 대로 씹어서 새장 밖으로 튀어 내 보내니 주위가 더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이왕 분양했으니 사랑으로 보살피자는 생각으로 참고 지냈다.
그러던 중 사정이 생겨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집은 전에 집보다 적은 평수라서 거실에 새장을 두기에는 협소하다는 생각으로 아예 현관에 둥지를 준비하였다.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 나 혼자이니, 이틀에 한 번씩 청소하면 되리라 하는 생각에 현관 전체에 비닐을 깔고 앉아서 놀 곳도 만들어서 새장보다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더러는 거실로 나와서 나와 눈도장을 찍으면 친숙해 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고장 난 키다리 선풍기에 먹이를 꽂아 주는 등 어떻게 하든 친숙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개구쟁이 아이처럼 화초로 날아가서 잎을 잘라먹지를 않나, 흙을 파지 않나 등 등 말썽을 피우는 것이다. 나는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회초리를 두드리면 방충망 꼭대기로 올라가곤 해서, 거기까지는 허용을 했다. 방충망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는 모습도 사랑스러워고 또 그 정도의 자유는 허용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을로 들어서부터 날씨가 쌀쌀해지니, 창문을 닫으려고 하다 보니 방충망 꼭대기에 붙어서 철사를 끊고 있었던지 두 군데가 구멍이 뻥 뚫린 것이 아닌가! 좀 더 있었더라면, 새들이 날라 갔을 것이었다. 우리 집은 10층이라서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한들 그 구멍으로 되돌아오기는 불가능할 것이며, 또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 죽고 말 것이었다. 아찔한 생각에 내 목소리는 커지고 잉꼬는 숨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영악한지, 어디에 숨었는지, 움직임은커녕 소리 한번 내질 않아서, 찾을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자고 아침에 보니 전등갓 위에 올라앉아서 소리도 안 내고 내가 찾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네 살짜리 아이의 아이큐라더니, 영락없이 내가 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가 저들의 주인인데, 싶어 끈기 있게 친숙해지려고 노력한 것을 아는지 내 곁에까지는 와도 붙잡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거실뿐만 아니라 주방까지 허용하였다. 모두 닫아놓은 상태이고, 혹여 배설물을 뿌린다 하여도, 내가 더 깨끗이 닦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화초의 맛이 입맛에 맞는지 아니면 나를 골려먹는 재미가 있는지, 기회만 있으면, 화초로 날아가서 이파리를 뜯기 때문에, 내 목소리 점점 높아지곤 했다.
아침에는 출근하기 때문에 별 문제없으나 , 저녁마다 가까이는커녕 전쟁을 치르다 보니 야속한 생각도 들어 어떻게 하든 내 곁으로 오게 하리라 하는 생각으로, 하루는 퇴근해서 새들이 저희들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장갑을 끼고 잡아서 가슴에 품어보리라! 전에도 참새나 병아리가 가슴에 안기면, 안심하고 잘 따라다니고, 심지어 눕기만 하면 가슴으로 올라왔고 결국에는 자면서 가슴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깔려 죽기도 했던 경험이 있어 어떻게 하던지 내 가슴에 한번 품어보면, 잘 따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 하루는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앉은 채로 잡아서 모처럼 가까이해보는 일을 시도히기로 결심하고 잠자는 둥지를 안고 거실로 왔는데,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현관 이곳저곳을 찾아봐도 보이지도 않고, 움직임이나 소리조차 없어서, 늦게까지 기다려도 기척이 없었다. 아마 신발장밑에 있는 공간에서 죽었나 보다 싶어서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애석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아침에는 거실에서 현관으로 나가는 문을 활짝 열었는데, 말썽꾸러기 아이가 돌아오듯이 소리도 없이 거실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내가 케오 패를 당한 셈이었다.
아! 이 정도로 두뇌 싸움을 할 수 있다니! 어이가 없어서, 저녁에 다시 한번 싸워 볼 요량으로 먹이만 챙겨주고 다시 현관으로 몰아내고 출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