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머리가 어느덧 자라서 귀를 덮어가고 있다. 누가 봐도 머리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에 시간 날 때 가자 싶어 미용실로 향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소식이 나왔다. 아이가 자꾸 뉴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관심 있어하자 사장님은 어린아이가 뉴스에 관심이 많다며 기특해하셨다. 아들은 뉴스가 아니라 탱크, 총 이런 것이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데..... 똑같은 뉴스를 봐도 어떤 이는 마음이 아프고 어떤 이한테는 호기심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몇십 번, 몇백 번씩 서로 다름을 발견하고 이해해 가는 것도 사회화의 한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참! 내가 이 글을 쓴 건 사회화에 관련된 얘기가 아니다. 바로 아이의 말이 재미있어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미용사께서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셨고 아이는 씩씩하게 샴푸실로 향했다. 샴푸를 하고 나온 아이한테 "머리 자르니까 어때?"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거울을 바라보고서는 "못 생겨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못생겼다는 말이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니 이건 누구나 미용실에서 경험하는 일 아닌가 싶다. 머리 할 때 머리에 약을 발라놓고 거울을 봤을 때 앞머리에 약을 발라서 눌러놓으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 들지 않을까? 샴푸하고 나왔을 때 정리되지 않고 눌러진 머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이의 말과 미용실에서 머리 하는 과정을 오고 가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하고 예쁘게 변신을 하려면 '못생김'의 과정이 필요하구나.' 우리가 뭔가 노력을 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힘듦, 고난, 그리고 눈물의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오늘 아프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건 예뻐지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그 '못생김'의 시간을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즐겨보면 어떨까? 곧 예뻐질 거니까, 곧 날아갈 수 있으니까, 곧 우뚝 설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나중을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거울에 보이는 '못생김'에 너무 우울하니까, 그것을 마주하면서 이겨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우니까.
그래서 미용실에서 못생김을 이겨내는 방법을 먼저 찾아본다. 우선 거울을 바라보지 않는다. '못생김'에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회피일 수 있지만 당장은 너무 힘드니까 맞서지는 않는다. 그리고 힘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잠시 딴생각을 한다. 이렇게 한 템포 쉬어보면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길 수 있으니까 '못생김'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쉬는 동안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충전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못생김'이 정리될 무렵에 고개를 들어 거울 속 내 모습을 마주하면서 변화 과정을 즐긴다.
미용실에서의 경험을 우리 삶에 가져와 보자. 우선 힘든 것, 고난과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 잠시 딴생각하면서 때로는 멍 때리기를 하면서 여유를 가져 본다. 그리고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고난의 파도가 어느 정도 잠잠해질 무렵에 고개를 들어 고난과 행복이 뒤엉켜서 순위가 바뀌는 그 순간을 만끽한다.
무엇보다도 예뻐지기 위해 필요한 '못생김'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이 생각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직 '못생김'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이 '못생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