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 Jul 13. 2022

시작 part 2

02. 어쩔 순 없어

나는 과학자이다.

그래서 늘 연구를 하고, 그 내용을 다듬고 또 다듬어 정말 필요한 내용들만 모아, 혼을 쏟아 넣는 정성을 들여 '논문'이라는 것을 만들고, 거기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이런 논문들은 어떨 땐 그저 그런 곳에(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기준으로) 나가기도 하고, 어떨 땐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정도로 좋은 곳에 투고되기도 한다. 그것을 실적이라는 밑거름으로 사용하여 정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고, 과학이라는 기술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펼쳐 내어 본다. 그를 위해서는, 그럴듯한 자료도 만들고, 때로는 발표도 해야 하며, 결국 돈을 달라고 하는 구걸이나 마찬가지인 과정을 정기적으로 거쳐야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같은 일을 하는 수많은 다른 과학자들도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경우에만 겨우겨우 실험용 자제를 몇 개 살 정도의 돈을 받아, 그걸로 몇 년을 버티는 것이다.  


나는 직장맘이라는 타이틀로 바쁜 삶을 살고 있고, 논문이 아닌 ‘개인적인 글’을 쓸 마음의 여유는 있을 리 만무하였다. 읽고 싶은 책이 생겨 읽다가도, 이럴 시간이 있으면 '엊그제 나온 그 논문'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려, 구입한 책들은 책장의 장식품이 되기 일쑤였다.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시즌이면, '오늘 시간 나면 이거 읽어야지' 하며 한 권 챙겨서 직장으로 나가곤 하지만, 그것도 겨우 한두 페이지 읽다가 가방에 도로 집어넣어 어깨만 무거워지는-마치 운동선수들 다리에 차는 모래주머니 같은- 그런 용도로나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엊그제도 일 때문에 새벽 5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으니 나에게 소설이나 에세이가 웬 말이냐.


그렇다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아주 가깝게 지내는 부부가 있는데-난 이들을 너무 사랑한다- 글을 쓴다면 이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주인공으로써 너무 매력 있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외모, 학벌, 직업,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말 그대로 '드라마 설정' 같은 조건을 가진 부부이다. 특히 남편이라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처럼 느껴져, 성격이 급한 나에게는 그 사람은 너무도 완벽하고 행복한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내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건 아니다.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부족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 사람이 가진 허당미는 넘치다 못해 꼭 글로 쓰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설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디가 모자라는 게 틀림없어. 그 좋은 학교는 어떻게 나왔지?'같은 생각을 자아내는 일들은 정말이지 너무나 욕심이 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우리 집 꼬맹이와 완벽하게 교감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나오는 글은 분명 읽는 이들도 힐링을 받을 것이다.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하루의 피로를 덜어내어 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글. 

내 글 실력이 좀 많이 느는 때가 온다면 꼭 한번 써 보리라.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당연히 또 있다.

우리 집 꼬맹이 이야기이다. 어렵게 갖은 건 아니었지만,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는,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 존재감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미칠 것만 같은 '커다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내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한히 솟구쳐 나와 몸 전체를 단 몇 초만에 돌고 또 돌면서, 내 마음 전체를 홀딱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는 짓은 또 얼마나 이쁜지- 물론 내 눈에만 그럴 것이지만- 하나도 잊고 살고 싶지 않아서 전부 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사랑이구나!"

나는 너무나 극성맞은 엄마의 사랑을 만들어-아이에게 뭐든 걸 다 해주는 그런 극성이 아닌, 내 안에서 혼자 신이 난 그런 극성이다- 그 감정을 신나게 만끽하면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쁠 때도, 서운할 때도, 힘들 때도 난 모조리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선택된 방법은 가장 현실적인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

그러나 고군분투하다가 혼자 깨달은 육아의 꿀팁 같은 걸 발견하게 되면, 혹은 가슴 찡하도록 행복한 "나는 우주만큼 보다 엄마를 더 사랑해"라는 말을 듣는 날이면, 이 모든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글로 다 써 놓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어김없이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하며 살고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현실은 늘 바빴고, 늘 정신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어 딱 자리 잡고 앉아보아도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키보드 위 내 손가락들은 갈길을 몰라 당황했고, 언제나처럼 나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막연한 나의 욕망은, 아이의 '먹고 자고 싸는’ 일지를 쓰는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며 달래지고 있었다. 덕분에 남편이 '꼬맹이 실록'이라고 부르는 일지를 5년째 채워나가는 중이다.


“우리 꼬맹이, 엄마의 최고 사랑,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나왔을까, 엄마가 진짜 많이 사랑해, 우주보다 더 많이 사랑해”

꼬맹이에게 나는 세뇌 수준으로 매일 같이 이야기한다. 그만큼 너무 이쁜 걸 어쩌리. 아이에 관한 나의 이야기는 당연히 글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그렇게 옛 어른들 말씀처럼 눈에 넣어도 눈곱만큼도 아프지 않을 꼬맹이를, 매일매일 붙어있어도 보고 싶고, 늘 같이 있고 싶은 꼬맹이를, 예고도 없이 남편에게 홀로 맡겨 두고, 나는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모두 이놈의 달팽이들 때문이었다.  


달팽이.

내겐 너무 끔찍한 생물체.



물론 나는 아이랑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싶고, 같이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동화 속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엄마는 절대 아니다. 당연히 화날 때 있고, 혼자 쉬고 싶을 때 많고, 그래서 아이가 일찍 자면 좋아하는 평범한 엄마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려면 이 정도로 강조하여야, 혹은 ‘그렇게 글쓰기가 힘든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뉘앙스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써야 했다.

우리 아이가 자주 하는 말처럼 '어쩔 순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시작 part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