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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 Jul 13. 2022

시작 part 1

01. 한번 해볼까?

어릴 때부터 나는 글 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특별활동을 신청하는 날,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학교를 못 간 적이 있었다. 그다음 주,  자리가 남아있는 반은 문예반뿐이었고-그 당시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반이었나 보다-한 학기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글쓰기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게 본격적인 나의 '쓰기'의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나는 글 쓰기를 너무나 즐기고 있었고, 겉 멋이 잔뜩 들어서, 본인이 사용하면서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는 어려운 어휘 정도는 써줘야 멋진 글이라 생각에, 난해한 단어만 나열하는 이상한 시를 써 대곤 했다.


 번은, '시적 허용'이라는  너무 마음에 들었던지, 동시를 지으면서 '누나'라는 말을   적도 있었다. 같은 문예 활동하던 친구가  여자아이인데 누나라고 하는 건 어디서 베껴온 게 맞다며 의심을 하였다. 어찌나 억울했었는지, 시에서는  괜찮다며, 그리고  부분에서는 언니보다는 누나가   맞는다며  아이를 설득하느라 씩씩대던 기억이 난다. 동요 가사인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러 주어라'에서의 '누나'라는 말이 마음에 었고, 내 시에 쓴다면 너무도 멋질 것만 같았다. 운율을 생각하거나, 혹은 특별한 의미를 두고 사용한 단어는 솔직히 아니었다.


마흔이 넘은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11살 때 만든 시 한 구절이 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을 만큼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조차 없는 구절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뭐야"라는 말 밖에.

그 시의 제목은, '동면'이었다. 푸핫!


나는 보리고개를 겪은 할머니처럼, 물건을 자꾸 모아두는 성향이 있다. 조금이라도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정리하여 내 주변에 두고 싶어 한다.


우리 집 꼬맹이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던 때가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뜨고 거실로 나오면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그렸고, 밤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불을 끄지 못하게 하던 때가 많았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 그림들은, 내 눈에는 정말 예술품이다, 어떤 것은 액자 속, 어떤 것은 파일 속에 각자 자리 잡아갔다.

나중엔 이 녀석이 그리는 양이 너무 많아지니까, 이쁘고 좋긴 한데 이걸 다 어떻게 가지고 있어야 하나 걱정이 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집 꼬맹이는 갑자기 색연필을 내려놓았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다운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요즘은 글씨를 쓰는 게 더 재밌어진 듯하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그동안에 모아두었던 꼬맹이 그림들이 내게 더 소중한 존재로 다가왔고, 요즘은 가끔 보물 찾기를 하듯 액자에 넣을 게 없을까 예전에 그린 것들을 뒤적거리곤 한다.


꾸역꾸역 모아둔  하나의 것은, 지금도 우리 엄마가 가끔씩 들쳐보며 울고 웃는다는-우리 엄마는 좋은 일에  많이 우는데,  마음이 너무나 진심이어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너무 우실까 걱정이 앞서 아예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초등시절 수년간의 일기장 모음이다.

처음에는 숙제로 시작했다가 그게 습관이 되어, 밀린 일기도 괜히 채워 넣는 이상한 의무감이 생겼고, 하루도 빠진 날이 없는 '초등 일지' 가질  있게 되었다. 수년간의 일기장은, 기억에  10 정도 되는, 예전 내가 초등학교다닐   사용하던 공책 묶음인데(요즘 아이들은 어떤 걸 쓰는지 모르겠다), 나는  권을   때마다 이를 잃어버릴까  투명한 박스테이프로 서로를 붙여나갔고, 나중엔  부피가 너무 커져, 초록색 박스테이프까지 동원하여 엮고 붙이기를 하였다. 일기장 뿔뿔이 헤어지는 일이 절대 없도록 만들어  것은, 비록 볼품은 없겠지만 친정엄마가 걱정 없이 열어보며 울고 웃고 하기에는 아주 튼튼한 묶음  것이다.



내가 어렸던 그 시절의 누구나 그렇듯,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의사, 판사 혹은 과학자였다. 의사, 판사는 아마 주위 어른들의 세뇌도 한몫했을 것이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막연하게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글을 '써야만' 하는 직업군에 종사하고 기는 하. 다만,  글이 내가 꿈꿨었던 그런 종류의 글은 아니다.

나에게는 수준 높은 어휘, 혹은 감탄을 자아내는 필력 따윈 없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있지,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무언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 '써야만' 하는 글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편히   있는 '나의  나의 '이기 때문일 것이다.


밑줄 그어가며 기억하고 싶은 그런 구절은 아마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반짝이는 눈으로 들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좀 미숙하지만 그들과 수다를 떨 듯 편안히 써내려 가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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