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by the ruffled plum

(책을 다 읽은 직후에 적었어야 하는데, 벌써 2주 가량 시간이 흘러버려서... 완독한 직후의 감동과 깨달음을 전달할 수는 없겠다)


구조가 상당히 특이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초반 작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동경하며 그가 살았던 삶을 한 숨까지 따라갈 수 있게끔 묘사할 때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너무 동경한 나머지 그를 롤모델 삼아 자신의 삶의 궤를 그처럼 따라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 뻔한 내용은 아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평생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개척하는 데에 쓰였다. 자연의 서열을 매기고자 하였으며, 지진으로 인해 수집한 모든 물고기가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는 몇 년에 걸쳐 다시금 물고기들의 이름을 찾아주었다. 이와 같이 대단한 열의로 후대에 이름을 남긴 학자로, 현대 분류학과 생물학의 대부급이신 듯 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후대의 학자들이 그가 그토록 집착하였던 '어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물고기, 어류라는 큰 틀에서 이 생물들을 하나씩 분류하고 특징을 분석하여 서열을 매겨주었던 조던에게 크나큰 비통함이 아닐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는 오직 증가한다.

이 세상에 질서란 아무리 쌓아올리고 싶어도 계속 무너지는 모래성이다. 혼돈에서 질서는 없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본인의 실수로 인해 놓쳐버리게 된 작가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통해 얻고 싶었던 교훈은 무엇일까. 이별, 삶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혼돈 속의 룰루 밀러는 아무리 자연 재해와 같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질서를 되찾을 수 있었던 조던의 힘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조던이 그렇게 몰두했던 '자연의 질서'는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다. 인종차별을 범하진 않았지만, 장애의 유전적 특성이 대대손손 인류를 망치고 있고 인류를 후퇴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졌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스탠퍼드 대학 학장직에서 내려와서 은퇴를 했을 때에도 여럿 앞에서 우생학 강의를 펼쳤다. 같은 인간도 장애라는 특성을 가진다면 열등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불임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미국의 역사이며 강제불임 피해자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을 만큼 최근의 역사이며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근현대 생물학의 길을 터준 위대한 학자이지만, 질서에 과도히 집착한 나머지 그는 꽤나 무시무시한 사람이기도 했다. 룰루 밀러는 조던이 틀렸다고 말한다. 혼돈 속의 질서는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얽히고 설켜 있으며 그렇게 서로 다른 특성들을 가진 우리들이 함께 공생할 때 세상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우며 꽤 괜찮은 상태라고 말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밀러가 기어코 조던의 책에서 스크리트닌을 발견해낸 그 대목은 정말 소름이 돋았다. 밀러는 좋은 이야기꾼인 것 같다.


내 삶에 있어서 시사점은.. 무엇이 있을까

밀러와 조던의 이야기로 오만, 우월감, 이런 못된 감정들을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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