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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uffled plum Aug 03. 2022

동그랗고 흐리게 번진 시선

혼자 문득 떠난 강릉. 스물 둘, 첫 홀로 여행

    가슴이 아프고도 시린,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은 그런 사연이 있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정신 없었던 3학년 1학기를 마친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니 나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탓이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언젠간 꼭 그래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이틀 정도 약속이 일정이 없어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막상 떠날까 하고 마음가짐을 가지런히 해보니 두려움이 앞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8시였는데 받아준 엄마에게 감사를 표한다) 장마로 인한 연이은 흐리고 찝찝한 날이 지속되었던 것과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엄마가 해소시켜주었다. 비에 거세진 바다만 보고 비만 쫄딱 맞고 오더라도 그 자체로 추억이고 의미가 있는 시간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즉시 숙소와 왕복 기차티켓을 끊었다.


   위의 글은 결국 홀로 여행의 당위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내 마음 역시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왜 떠나고 싶었을까.


    막연히 계획 없이 떠나온 강릉이긴 했지만 사실 무의식 속에는 뚜렷한 목표가 몇 가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한 것이겠지.


    당일 아침 입학처 일을 마치고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정리하고 간단한 집 정리 후 쓰레기를 모아 버린 뒤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왠지 모르게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고민과 평소와 달리 발라드를 들었기 때문이겠지. 아 날씨도 한 몫 했을 거야.

    나 홀로 여행이라는 게 처음이라 하나 하나 내가 챙겨야 하는게 버겁기도 하면서 뭔가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기차에서는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신나게 단체로 여행을 왔는지 막 떠들더라. 노캔을 켜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로 해결했다. 비 오는 날 혼자 여행이라니 사실 좋았다. 나 비 좋아하니까. 날 차분하고 침착하게 만들어주는 날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진 고민들은 내 일상 속에서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유튜브를 보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를 회피해왔다. 지독한 겁쟁이라. 이번 여행은 이런 고민들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제대로 맞닥뜨리겠다는 내 용기이기도 했다.


    정말 문득, 기찻길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자기소개서나 드라마 영화같은 곳에서 어떠한 메시지가 뇌리에 깊이 박혀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게 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그게 다 순엉터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문득 내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면 되잖아.'

    디자인 공부하면 되고 부딪혀보면 되잖아. 금융 공부도, 경제 공부도 하면 되잖아. 안되는거 아니잖아. 못하는거 아니잖아. 답답해 하기만 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되잖아. 왜 한탄만 하고 살았을까. 아무것도 잘하지 못할까봐, 사실은 빈껍데기 밖에 없는데 요란한 애일까봐 시작도 못한거 아니야? 당장은 하기 싫어도 길게 보면 다 이뤄내고 싶은 일인데. 다 잘하고 싶은데. 하나도 안 빼고 다 잘 해내고 싶은데. 날 늘 누르던 무력감은 결국 두려움에 맞서지 못한 내 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 많고, 아직 어린데. 괜히 주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늦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거듭 해왔었다. 누구나 번데기 시절은 있는 건데, 처음부터 나비가 되고자 했던 엄청난 오만이었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 그거 다 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 그렇게 기차에서 생각을 다 정리했다.


강릉행 열차. 비가 슬그머니 창에 무늬를 새기다 말다 하더라

    강릉에 도착하고 나서 배차 간격이 극악이라는 블로그를 보았기에 큰 기대 없이 다음 버스를 확인했는데 5분 뒤였다. 그리고 조금씩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한껏 차분해진 마음에 뭔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강문 해변에 도착했더니 비가 그쳤다. 버스에서 내릴 때만 해도 우산을 쓰다가 한 30걸음 걸었나. 비가 그쳐서 우산을 접었다. 강문 해변까지 걸어 가는 길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언가 이뤄낸 느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성취감과 기쁨이 있는데 일상에서는 허덕이느라 이런 기회를 발견하지 못했어. 더 행복한 내가 되려면 결국 연습과 노력으로 프로그래밍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강문 해변에 도착하고 숙소에 찾아가 체크인을 했다. 숙소가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서 바다, 사람 구경만 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게으른 몸을 이끌고 나가기로 했다. 숙소에 망원경이 있었다. 그걸로 바다, 사람, 파도 등을 방 안에서 구경하다가 문득 망원경 렌즈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면 감각적인 사진과 영상들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구마구 찍었다. 이번 여행에서 망원경은 정말 큰 역할이었어.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고 해는 곧 질 것만 같았기에 서둘러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은 전부 휴무라 차선택으로 전복해물뚝배기를 먹었다. 뭐,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음식에 대한 기준이 높질 않기에.

    그리고는 해변을 따라 걸으며 사진도 많이 찍고 망원경으로 저 멀리 서핑 중인 사람들도 구경하고 연인들, 가족들, 혼자 사색을 즐기러 온 사람들 구경도 했다. 생각보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았다. 사실 연인들 가족들만 있었어도 외롭지 않았겠지만. 그리고 비가 갠 예쁜 하늘을 눈에 담았다. 몰아치는 파도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감정과 느낌들을 전부 느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싶었어. 평소엔 이걸 하다가도 저거 생각을, 저거 생각 하다가도 또 다른 걱정을 하잖아. 그런데 흘러가는대로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이게 혼자 여행의 제일 좋았던 점이 아닐까.




    그 모든 것을 눈에 다 담아 온 게 기특하다.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횡설수설하여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지 못했지만 내 기분과 상태가 이 글에 녹아 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망원경 렌즈로 본 강릉이 정말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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