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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uffled plum Aug 09. 2022

EyesOpen-MindsOpen

OBEY_Shepard Fairey

    롯데뮤지엄의 셰퍼드 페어리 전시를 보고 왔다. 전시 보러 가자고 23번 정도 말만 했던 P씨와.

(전기 후기는 처음이니 일목요연한 글을 기대하진 마시길. 근데 확실한 건 정말 솔직하게 적었다.)



WE OWN THE FUTURE


    셰퍼드 페어리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은 아니다. 페어리가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재학 시절 프로 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 모프를 모티프로 한 스티커 작업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 Andre the Giant has a Posse>이 디벨롭된 OBEY Giant를 의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수준으로만 알고 있던 차였다. 

왼: Andre the Giant has a Posse, 오: 전시 티켓, 우리가 아는 바로 그 OBEY Giant


    OBEY라는 의류 브랜드의 로고와 스타일로 나타나는 확실한 아이덴티티가 내 구미에 딱 들어맞긴 했다. 그래서 더욱이 이 전시가 기대되었던 것이다. 전시를 보기 전 OBEY에 대한 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 유학시절 오베이 입고 (반스 신고) 스케이트보드 타던 백인 남자애들이 떠오른다.

- 자유롭다? 약간 I don't give a shit about orthodoxy so get the fuck off 노인네들 이런 느낌

- 왠지 모르게 반항적인 느낌이 든다. 아마 째려보는 듯한 Andre의 삼백안 때문인 듯 + 자기주장이 강한 듯한 스퀘어 프레임의 두꺼운 선들 + 강조된 음영


뭐 대충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전시장에 들어갔다.



전시 도입부에 이런 게 있더라. 역시 장사치들이라 포토스팟이 하나쯤은 필요했던 것이라는 냉소적 판단.


    전시를 다 보고 난 뒤 페어리는 정말 이름처럼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Shepard는 Shepherd처럼 아트워크로 강한 argument를 전개한 뒤 양과 같은 대중들을 매료한다. 페어리는 idol 혹은 muse라고도 불릴 수 있을 인물들을 자주 기용한다. 예술계 데뷔작이라고 볼 수 있을 Andre the Giant has a Posse부터 페어리는 참 한결같다. 밥 말리, 바스키아, 오바마 등 상징성을 가진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누구인지 모를 다양한 동양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전시 마지막에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의 아시안계 아내가 일종의 뮤즈였음을 알 수 있었다. 비주류 문화를 선도하는 페어리. 단언할 수는 없지만 2007년 오바마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던 Hope 포스터 이후 페어리는 메이저가 된 것 같다. 단순히 그가 mainstream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본인이 비주류가 아닌 어찌 보면 특권층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IY 정신, 펑크, 락, 스케이트보드 등 1980년 그의 유년시절에서 비롯된 페어리의 아트적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존경스럽다. (어쩌면 어느 계급이든 불평불만할 거리가 넘쳐나도록 굴러가는 사회가 그 원인일지도.)


    또한 Fairey는 쉬지 않고 Fair하지 못한 미국 정치와 석유 중심의 정치 및 경제를 비판한다. 모든 작품이 꽤나 sarcastic 한 풍조가 느껴지는 것이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페어리는 아티스트보다 운동가로서의 색깔이 두드러진다. 아트적으로 내가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예술사에 길이 남을 그런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페어리는 unfair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사회 기조에서 부당한 것(immigrants, racism, feminism, oil power, bs politics etc.)들에 대한 메시지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graffiti나 illegal sticker 작업을 많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폭력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이 강제 accessibility는 어찌 됐든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에 일조하기도 했다. 페어리는 성공한 운동가이며 준수한 아티스트라고 평가하고 싶다.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아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작품들이 꽤나 재밌다. 다큐멘터리에서 페어리는 최대한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아트워크를 내어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거의 모든 작품에 text를 삽입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는 flower, globe, gun, scale 등의 모티프를 애용한다. 이를 그가 빛바랜 듯한 빨강, 파란색들로 거대하게 묘사하여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시적(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만)으로 작품을 보았을 때와 미시적으로 작품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게 다르다. 디테일들이 많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뉴스 스크랩이나 텍스트, 왠지 모르게 oriental 향이 물씬 나는 패턴들, 적나라한 메시지를 담은 일러스트들까지 작품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다음에도 P씨와 전시를 보러 가야겠다. P씨와 내가 전시를 보는 시선이나 템포가 비슷했던 것 같다. 지쳤던 부분도 동일했던 것으로 기억. 다음엔 전시 감상 후 즉시 글을 적어 더욱 생생한 표현을 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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