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위험에 놓인' 존재
"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안보이지? "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서야 깨닫는 순간이 있다. 분명 거울을 확인했고,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 차 바로 옆, 혹은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이건 부주의라기보다 자동차에 원래 존재하는 사각지대 때문이다. 자동차에는 필러와 차체 구조, 시야 각도 때문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보이지 않는 구역이 생긴다. 전방 2미터, 후방 5미터, 사이드미러 너머의 각도. 특히 키가 작은 아이나 고령자의 경우 운전자 눈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러므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위험에 가장 먼저 놓이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인지적 사각지대에는 과연 어떤 이들이 있을까.
한국에서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경우 발달장애인으로 분류하고, 그 정도에 따라 경증과 중증으로 구분한다. 반면, 지능지수가 85 이상인 경우에는 비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 체계 하에서 지능지수 71 이상 84 이하에 해당하는 개인들은 제도적으로 명확히 포섭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위치하게 되며, 이러한 사각지대에 속하는 이들은 ‘경계선 지능인'으로 지칭된다.
경계선 지능인이란?
경계선 지능인은 경계선 지적 지능의 줄임말로 BIF(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느린학습자’라는 호칭으로도 불리며 일반적으로 지능지수 70-85 사이에 속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강옥려, 2016;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94).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개념은 아직 국가 차원의 법령으로 제정되지 않았으며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으나, 조례마다 정의가 상의하여 통일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의 경우 국민 중 몇 명이 경계선 지능인인지 명확한 통계는 현재까지 없으나 지능지수의 정규분포도에 따라 전체 인구 중 약 13.6%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특수교육대상자보다도 큰 집단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실태조사의 지적장애인 출현율이 0.38%인 것을 미루어볼 때 경계선 지능인의 비중은 지적장애인보다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경계선 지능인의 관계적 어려움과 장애화
현재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개별적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와 제반 환경으로 인해 여러 제약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정도,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반응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이런 특성을 주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적 인식 개선과 교육 지원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부족하기에 관계 형성에 있어 많은 제약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적 어려움이 누적되면서 경계선 지능인은 세상과의 단절,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더 커지게 된다.
흔히 경계선지능인은 사회성이 부족하여 사회 적응에 어려움이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성'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 타인과 원만하게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경계선지능인이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추어 원만하게 행동하고 원만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만이 사회성일까? 비장애인이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경계선지능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능력 또한 사회성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세계장애동향(민세리, 2024).
가정, 최소한의 기댈 수 있는 공간의 부재 현상
가정에서도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에 다양한 영역에서 또래와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자 부모들은 기대와 다른 자녀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그 책임을 자녀의 탓으로 돌리며 자녀를 꾸짖거나 반대로 본인들을 자책하는 자괴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Trimble, 2001: 송현주, 2008에서 재인용). 이는 자녀와 부모 간의 문제를 넘어서 부부간, 다른 자녀 간의 문제로도 번지게 되는데 부부의 경우에는 양육 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충돌, 자녀 간에는 경계선 지능 자녀에게만 편애하여 다른 자녀를 소홀히 하게 되는 상황들도 벌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경계선 지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한국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 압축성장, 배달문화 등 한국 사회 속도 숭배는 느린학습자가 살기에 매우 부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경쟁주의적이고 일률적인 교육문화는 경계선 지능인의 어려움을 더 크게 부추기고 있다. 한국 학생들의 국제학업성취도는 최상위에 속했지만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에 속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있어 ‘학습 부담이 너무 클 때(20.8%)’, ‘성적 압박이 심할 때(15.6%)’라고 응답하였다(박종일 외, 2010). 이처럼 성적에 대한 압박과 학습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경쟁 이데올로기로 인해 경계선 지능인은 학업적 좌절과 실패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로 인해 무능력감과 우울감 등 내재화 문제를 겪게 된다.
이렇게 경계선 지능인은 보이지 않는 적신호로 둘러싸인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관련 법적 조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적절한 공적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어찌보면 일시적으로 바라봤을 때 손상이 없어 보이는, 다시 말하면 지원이 불필요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는 인식이 강한 이유도 있다(Peltopuro, 2014: 진정림, 2023에서 재인용).
하지만 유엔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에서는 장애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있지 않으나 제1조에서 ‘장애인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과 동등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손상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장애는 개인의 손상에서 발생되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합의되지 못하여 동등한 사회 참여가 어려워질 경우 발생한다고 표현하며 사회적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계선 지능인은 현재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활동, 참여의 제한, 환경의 제약 등과 만나서 개인의 특성이 ‘장애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화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을까.
다음편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이 겪는 교육에서의 장애화 경험부터 아이리시 매리언 영이 말한 문화제국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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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옥려 (2016). 경계선급 지능 아동의 교육: 과제와 해결 방안. 한국초등교육, 27(1), 361-378.
박종일, 박찬웅, 서효정, 염유식 (2010).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연구와 국제비교. 한국사회학, 44(2), 121-154.
정용문, 박미량, 민세리 (2024). 세계장애동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진정림 (2023). 구조화된 사회성증진 집단놀이치료 프로그램이 경계선 지능 초등학생의 사회성 발달 및 자기효능감에 미치는 영향.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94).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4th ed.). Arlington, VA: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