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공동체, 일본 베델의집 방문기를 통한 대안 공동체 의미 탐색
'정신장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불편과 위협, 멀리하고 싶은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수 있으며, 특히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는 사회적 낙인을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다. 국가인원위원회가 공개한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 2021'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제공하는 원인 1위로 TV와 영화, 신문 등 대중매체를 꼽았다. 또한 인권위에서 약 10년간 정신장애, 정신병원, 조현병, 정신분열증 등 키워드를 대중매체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분석한 결과 병원, 입원, 치료, 증상, 의사, 진단, 약물, 진단 등 치료적 용어와 함께 쓰였다고 한다. 더불어 경찰, 여성, 흉기, 혐의, 살인, 범행 등의 범죄적 용어도 같이 사용된 반면 인권, 상담과 같은 정신장애인의 권리와 관련된 용어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신장애인은 대부분 정신병원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왔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정신장애로 한 번 낙인찍히게 되면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니게 된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데,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경우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요구가 증폭되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거주시설이 등장하였고 정부는 장애인 복지정책에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장애인거주시설이 만들어지면서 기존에 집에 숨어 지냈던 장애인들은 시설로 옮겨져 평생 지내는 것이 흔한 광경이 되었다. 이는 정신정애인에게도 정신병원 수용을 통한 사회적 격리를 촉진시켰고 시설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1964년에는 조현병 환자가 일본 미 대사인 에드윈 W. 라이샤우어(Edwin W. Reischauer)를 찌른 사건으로 인하여 정신병원구금을 촉진하는 여론이 확산되었고 일본 정부는 이에 따라 정신병원을 대폭 확충하고 정신장애인들을 대규모로 수용하는 정신장애인복지를 시행하였다(岡田, 2002). 그런 흐름에서 일본에 출현한 정신장애 공동체, 베델의집 모델은 과거사와 더불어 현재의 장애 동향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부터 베델의집에 대해 살펴보겠다.
베델의집의 시작, 훗카이도 우라카와
베델의집은 1980년, 인구 13,000명 가량의 훗카이도 어촌 마을인 우라카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회복지사 무카이야치 이쿠요시와 정신장애인들은 자조그룹인 '도토리의 모임'으로 출발하였으며 병원 밖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입원생활을 마치고 나오게 되었다. 무카이야치와 정신장애 청년은 그때 목사로부터 구회당을 빌려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이 공간은 정신장애 멤버들이 오가면서 사랑방의 역할을 하다가 그룹홈으로 개조되었다.
이후 수많은 정신장애 멤버들이 병동에서 나와 그룹홈에 거주하며 지역사회에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무카이야치와 멤버들은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한 명의 주민으로 존중받고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지역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러다 지역의 특산물인 '다시마'를 가공판매하기로 결심하였고, 처음에는 지역의 어부와 계약하여 일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다가 직접 가공과 상품화, 판매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복지용품을 판매하는 복지샵 베델, 베델의집에 관한 책 발행, 카페부라부라,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을 담당하는 신선팀, 피어서포트 등으로 일의 방식을 다양하게 확장하게 된다(김호현, 2016).
당사자연구
당사자연구는 베델의집이 알려지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게 된 마스코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당사자연구란 당사자가 주역이 되어 자신이 지닌 삶의 어려움을 연구하고 장상, 약 복용, 생활상의 과제, 인간관계, 일 등 다양한 고생에 대해 주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사자연구는 당사자들의 병과 증상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식하며, 고생을 지닌 자신과 발생되는 문제를 제3자의 시점으로 조망하여 삶의 패턴을 밝히고 고생의 패턴을 빠짐없이 파악하고자 한다. 필자는 무카이야치 사모님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당사자연구의 시작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약물을 복용했는데도 증상이 회복되지 않는 환자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의료적인 고민만 했던 찰나에 의사에게 이 고민을 나누자, 의사는 본인에게 물어보지 말고 당사자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는데, 그런 방식으로 고민을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 당사자연구라고 하였다.
SST
SST는 사회기술훈련의 약자로, 1992년 우라카와에 도입되었으며 당사자연구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정신과의사를 비롯한 전문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컨디션 난조나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해소해왔던 '전부 위임 상태'에서 벗어나 당사자 자신이 '고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컨디션과 기분, 생활 고충의 의미와 패턴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맞는 자기대처 방법을 찾아내 현실의 생활장면에 활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연습'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베델의집을 방문했던 첫 번째 날, 운좋게도 SST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먼저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각자 자신의 병명을 생각해보고 이에 대해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기존에 몸짓을 자주 사용했던 사람은 몸짓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표현을 하고, 몸짓을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은 몸짓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자기표현을 해냈다. 필자도 병명을 정하였는데, 평소 시간이 남을 때마다 과거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로 인해 우울감과 불안감이 몸속에 번져 흐르는 듯한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하였고 이를 '의미부여병'이라고 명명해보았다. 나중에 이에 대한 조언을 멤버들에게 구하였는데 '친구들을 만나라', '혼자있지마라' 라는 말과 함께 좋은 고생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이런 활동의 시간들을 통해 필자 또한 당사자성에 접속해나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특히 필자가 가진 고민과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개방할 수 있었고, 의료적인 진단명에서 벗어나 '고생'이라는 보다 친숙하고 편안한 기표로 연결되고 위로받는 경험이 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멤버들 중 일상에서 자신이 겪는 관계적 어려움과 사회 적응 문제에 대해 사례를 나누고 이를 연극의 형태로 재현 및 수정 연습을 해나가면서 전문가주도적인 성격이 아닌 동료들 간의 협력적인 모색을 해나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동료지원활동가와의 대화
베델의집 견학 활동 중에서 필자는 동료지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던 두 분, 그리고 현재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분과 술자리를 가지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동료지원활동가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다른 당사자를 지지하고 돕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데, 베델의집에서도 동료지원활동가들이 멤버들의 사회참여를 돕는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의 실수 경험으로 동료들을 돕고 있다
동료지원활동가 A씨는 자신이 실수를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 그로 인해 멤버들도 실수하는 것이 괜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하였다. 사실 일본과 한국 나눌 것 없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 '실수'라는 언어의 표상은 사회적인 인식에서 비슷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맡거나 행할 때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면 안된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이로 인해 사회나 공동체에서 자신이 배격되거나 낙오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의 증폭들. 그로 인해 '실수'라는 말은 어느 순간 문제시되고 결점으로 인식되거나 감춰야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베델의집에서는 A씨가 지닌 '실수'라는 자기결점성이 다른 멤버들에게 오히려 위안과 공감적 지지 기반으로써 심리적인 회복에 기여해나가는 힘으로 재구성되는 것으로 보여졌다.
약을 먹지 않았던 경험으로 약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동료지원활동가 B씨의 경우 약과 여자에 약한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면서 과거 자신의 아픈 사연을 유쾌하게 나눠주셨다. B씨는 본인이 사랑하는 여자가 생길 경우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커지면서 약을 중단하였다고 했는데, 이로 인해 결국 증상이 다시 악화되면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반복적인 패턴으로 나타나며, 3번의 입원 경험이라는 고생으로 연결되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 본인은 멤버들에게 자신처럼 고생을 하고 싶으면 약을 끊으라는 말을 하면서 약을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의료적 모델 비판에 대한 오해와 약물 복용의 중요성
장애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동안 장애인의 일상적 어려움을 의료적으로만 개입해나갔던 모습들, 사회적 변화와 환경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개인을 문제화했었던 그간의 역사로 인해 의료적 모델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장애학'을 도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적 모델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의료적 개입과 의사라는 전문가의 권위에 저항하고자 그 극단적인 실천방식으로 약물을 중단하는 것은 좋은 혜안책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B씨는 당사자로서 약물을 극단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있음을 경험적인 측면에서 동료들에게 조언하고 설득해나가는 주요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동료지원활동가만이 가지고 있는 힘과 역할
A,B씨에게 필자는 전문가 또는 의사가 아닌 동료지원활동가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힘이 무엇인지 질문해보았다. 그러면서 본인들의 시행착오적인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주었는데, 처음에는 의사들의 언어를 빌려 자신들이 조언을 하는 방식을 적용해보았지만 결국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때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게 되었고, 자신들은 약을 먹지 않고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들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재고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자신들이 지닌 '경험'을 기반으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과 경청을 해나가는 것은 동료지원활동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답을 들려주셨다.
약함을 수용하고, 약함으로 연대해나가는 공동체
베델의집을 떠나는 마지막 날, 이 공동체에서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멤버는 "친구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대답을 하였다. 이 대답을 통해 필자는 멤버들이 베델의집 공동체에서 왜 함께하고 싶은지, 베델의집 공동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 '관계 회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실 베델의집 멤버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경험하다가 사람과 집단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배경이 되어 증상이 발현되거나 악화되면서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기에 사람을 기피하고 집에서 혼자 고립된 삶을 선택했지만 결국은 저마다 마음 한 구석에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자신의 아픔과 증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문제시하며 바라보지 않는 분위기, 전문가에게 의존해나가는 방식이 아닌 당사자들이 삶을 주도해나가는 방식, 빠르고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또는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등 베델의집 공동체는 관계를 회복해나가는데 있어서 고유한 방식과 독특한 문화적 힘을 통해 회복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이는 Priestley(1998)가 세운 장애학의 네 가지 패러다임 중 언어와 문화에 대한 개념을 중요시한 사회적 구성주의 모델의 실천 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자신의 약함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그 약함을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수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당신은 어떤 공동체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속한 공동체는 당신을 당신 답게 만들고 있는가.
정신장애 공동체, 베델의집 모델의 문화는 장애를 떠나서 건강한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당장의 나부터 행복할 수 있기 위한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구성되면 좋을지 46년을 넘어서는 지금까지도 계속 유효한 질문을 던져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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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2016). 베델의집 렛츠! 당사자연구. EM커뮤니티
정호현 (2016). 정신장애인대안공동체 연구: 일본 베델의 집 사례를 중심으로. 장애의 재해석, 139-183.
Priestley, M (1998). Constructions and creations: Idealism, materialism and disability. Disability: & Society, 13(1), 75-94.
岡田靖雄. (2002). 日本精神科医療史. 医学書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