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애인고용, 지원을 넘어 권리로

고용접근권의 개념과 고찰

by 허무는사람들



접근권의 개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접근’이라는 것은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로서 다양한 분야를 막론하고 해당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여기에 ‘권리(right)’에 대한 의미가 결합되면 ‘접근권(the right to access)’이라는 단어가 생성되며 이는 비교적 최근의 권리개념이다. 접근권 개념은 불평등의 확산과 빈부격차 증대로 인해 사회적 기본권 보장의 필요에 따라 함께 등장하게 되었으며,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들을 실제적이고도 절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창안된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다(서정희, 2010; 오대영, 2009). 특히 교육, 의료, 직업, 문화, 오락, 그리고 복지 등의 활동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 반드시 확보해야 하고 행할 수밖에 없는 일상생활에 대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김창민, 2009)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 반대 운동 장면

접근권은 장애인이 시설에 수용되는 방식에서 지역사회에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운동에서 제기된 접근성(accessibility) 개념을 권리로 규범화한 것이며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접근성을 ‘권리’로 인정하면서 더욱 공식화되었다(심재진 외, 2018).

유엔은 접근성 개념을 “당사국은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도시 및 농촌지역 모두에서 물리적 환경, 교통, 정보와 의사소통 기술 및 체계를 포함한 정보와 의사소통, 그리고 대중에게 개방 또는 제공된 기타 시설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제9조 1항),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건물, 도로, 교통, 학교ㆍ주택ㆍ의료시설ㆍ직장을 포함한 기타 실내ㆍ외 시설”(제1항 a호)과 “정보, 의사소통 및 전자서비스와 응급서비스를 포함한 기타 서비스”(제1항 b호)를 명시하고 있다(심재진 외, 2018). 접근권의 개념 신장은 기존의 국제인권법이 장애인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연성법(soft law)에 한정되었던 점을 극복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Kayess & French, 2008).


접근권과 노동


접근권의 개념은 장애인의 경우 그동안 접근의 보장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영역으로 시설접근권, 이동권, 정보접근권이 거론되어 왔다(유동철, 2009).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정보적 접근만으로는 장애인의 삶 전반에 있어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는 노동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율성과 사회적 관계 형성, 자기실현의 토대가 되는 핵심 영역이며, 이에 따라 노동에 대한 권리는 삶의 주체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존엄을 실현하는 기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Standing, 2011).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권은 단지 일할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존엄과 사회적 권리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특히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는 집단에게는 노동에 대한 실질적 접근이 곧 권리 회복이자 사회 통합의 핵심 경로가 된다. 따라서 고용에 대한 접근권은 단순한 취업 기회를 넘어,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조건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중증장애인 노동권 운동 (출처: 비마이너)

고용접근권이라는 개념


‘고용접근권’이라는 개념은 기존에 장애인 고용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어 왔던 용어인 ‘고용지원’의 개념과는 그 의미와 접근 방식에 있어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고용지원은 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집단을 대상으로 한 정책적 개입으로 정의된다. 산업화 이후 복지국가의 형성과 함께 고용지원은 기능적 자립을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특히 장애인, 여성, 청년, 고령층 등에 대해 직업훈련, 고용알선, 고용장려금 등을 제공하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조흥식 외, 2019). 이러한 고용지원은 개인의 능력 결핍이나 취업 준비 부족을 보완한다는 기능주의적 관점에 기반하며, 국가나 제도는 능동적 지원자, 당사자는 수동적 수혜자로 구분되는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내포한다(Oliver & Barnes, 2012). 결과적으로 고용지원은 ‘돕는’ 행위로 이해되며, ‘일할 수 있는 권리’ 자체보다는 노동시장 진입의 기회를 조건부로 제공하는 도구로 작동해 왔다.

반면 고용접근권은 노동에 대한 권리를 인권의 차원에서 재정의하는 개념으로, 개인이 차별 없이 노동시장에 접근하고, 선택하며, 지속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는 UN 장애인권리협약 제27조에서 명확히 보장되며, 고용에서의 기회균등과 합리적 편의 제공은 국가와 고용주에게 법적 의무로 부과된다(United Nations, 2006). 고용접근권은 단순히 ‘지원받을 자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장벽을 제거하고 동등한 조건을 보장받을 권리로 이해된다. 특히 장애인이나 신경다양인과 같이 구조적 배제의 경험이 축적된 집단에게 있어, 고용지원의 시혜적 접근만으로는 평등한 노동권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이에 대한 권리 중심의 재구성이 요구되고 있다(Degener, 2016; Shakespeare, 2006).


한국의 고용접근권


한국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용 접근은 여전히 제도적 한계와 인식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 존재하지만, 실제 고용현장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능력에 대한 과소평가, 직무 부적합 판정, 편의 미제공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접근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폐스펙트럼, ADHD, 학습장애, 난독증, 경계선 지능 등 신경다양성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무르거나, 단순 보호 대상 혹은 훈련 참여자로 한정되곤 한다.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고용을 ‘권리’가 아닌 ‘지원’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의 정책적 한계를 보여준다.


기능주의 중심적 고용 실천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에서 ESG와 함께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및 포용성(inclusion)을 포괄하는 DEI 개념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박한나 외, 2024). DEI는 조직 내에서 개인의 다양한 특성, 배경 및 경험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다양성),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는 조건(형평성), 그리고 모든 개인이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참여 및 기여할 수 있는 포용적 환경(포용성)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고용 영역에서도 장애를 포괄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마련되어야 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한편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DEI 정책이 폐기되자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DEI에 대한 깃대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특히 Microsoft, EY, SAP, JP Morgan Chase 등은 2017년부터 '신경다양성 직업 고용주 원탁회의(Neurodiversity Work Roundtable)'를 결성하여 신경다양성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인지적 특성과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환경과 채용과정, 지원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렇게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노동과 고용 접근성에 있어 권리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실시한 2022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기업체가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주된 이유로 ‘장애 여부를 고려 않고 업무상 필요에 의하여’가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으며, 장애인 고용기업체의 2021년 장애인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전체 근로자와 비교하여 약 28만 원이 적다는 통계, 장애인 근로자 인사와 노무 관리 시 애로사항이 있다는 응답이 높은 수치로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이 고용을 ‘생산성’, ‘효율성’, ‘역할 수행 능력’이라는 기능적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기능주의 중심적 고용 실천을 보여주는 것으로 장애인의 노동을 권리가 아닌 조건부 수용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을 수 있기에 이를 비판적으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고용서비스 경험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당사자가 배제된 대화의 장에 대한 참여 경험, 직업재활지원계획 수립에 있어 당사자가 그 과정을 모르고 있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당사자의 의사가 배제되고 있는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박광옥, 2018). 이는 장애인 고용에 있어 신경다양성을 가진 이들이 ‘주체’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고 있기에 이 또한 비판적으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며


이제는 바야흐로 장애인 고용도 권리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장애인 고용에 대한 권리 주창은 보다 더 일찍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발화 또한 불필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말은 결핍으로부터 비롯된다.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외치는 이들에게 불편의 눈초리를 올리기보다 권리에 대한 결핍을 태동시키는 작금의 사회구조를 비판으로 응시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김창민 (2008).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물리적 접근권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논문.

박광옥 (2018). 발달장애인의 고용서비스 경험의 사회적 조직화: 제도적 문화기술지의 적용.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박한나, 진범석 (2024). 글로벌 10대 기업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전략 및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탐색적 고찰. 광고 PR실학연구, 17(1), 32-63.

서정희 (2010). 장애인의 접근권: 장애인권리협약과 비준당사국의 이행보고서 지침을 기준으로. 사회보장연구, 26(4), 49-75.

심재진, 서정희, 오욱찬 (2018).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접근권 개념과 개별 국가의 사례: 반차별권(합리적 편의제공 의무)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장애인복지학, 40, 91-122.

오대영 (2009). 장애인의 접근권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석사학위논문.

오욱찬, 김성희, 서정희, 심재진, 오다은. (2018).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와 공적 편의 지원 방안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Degener, T. (2016). Disability in a Human Rights Context. Laws, 5(3), 35.

Kayess, R. & French, P. (2008). Out of darkness into light? Introducing the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Human Rights Law Review, 8(1), 1-34.

Oliver, M., & Barnes, C. (2012). The New Politics of Disablement. Palgrave Macmillan.

Shakespeare, T. (2006). Disability Rights and Wrongs. Routledge.

Standing, G. (2011). 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 Bloomsbury Academic.

United Nations. (2006).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경다양성, 결함을 강점으로 바꾸는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