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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의 억압 개념 : 주변화

발달장애인의 교육과 노동을 중심으로

by 허무는사람들
발달장애인 선거법 개정 요구 시위 장면 (출처: 비마이너)

얼마 전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대선을 치뤘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선거'는 모든 시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가장 상징적인 절차이다. 이처럼 선거는 주권의 실현이자 시민됨의 증표로 기능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선거가 같은 의미로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선거 과정에서 특히 발달장애인은 정보 접근의 차단, 제한된 의사소통 지원, 제도적 무관심 속에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자격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주변인의 경험을 다수 하였다고 한다. 이는 주권 행사의 평등한 기회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발달장애인에게 형식적으로만 투표권을 보장하는 모순적인 현상을 초래하였다.

무엇이 발달장애인을 주변화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주변화의 개념

주변화는 “어떤 물건이나 지역의 바깥 쪽 둘레 언저리”를 뜻하는 주변이라는 단어 의미에 기초하여 성립된 개념이다. 주변화의 개념은 사회학자인 Park의 ‘주변인(marginal man)’으로부터 발전하였는데, 여기서 주변인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지칭된다(Park, 1928). 이러한 주변인 이론이 발전함에 따라 집단의 구조 및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강조되었다(Messiou, 2006). Tucker(1990)은 주변화에 대해 특정 집단의 사회적 위치가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상대적으로 그들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어 무시받으며 권한이 없어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주변화 과정은 계충적 권력 구조에 의해 발생하며, 주변화된 대상은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자원과 권력의 분배에서 불평등을 경험한다(신동인, 2022). 주변화의 개념은 그 의미가 점차 확장되면서 소수집단과 다수집단의 위계에 의하여 배치되는 사회적 위치 및 이와 관련된 소외, 배제, 차별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다(Hall et al., 1994).


Young의 5가지 억압 개념 : 주변화

Young(1990)은 억압을 사회 구조적으로 발생하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차별과 폭력의 문제로 인식하고자 하며 구조적 부정의로 나타나는 억압을 착취, 주변화, 무력함, 문화제국주의, 폭력의 다섯 가지 형태로 유형화하였다. 그 중 주변화(marginalization)는 가장 위험한 억압 형태일 수 있으며 노동 시스템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일컫는 주변인(marginals)이란 단어로부터 비롯되었다(Young, 2017). 주변화는 일상에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으로 이주민, 성소수자, 신체적 손상이 있는 사람, 인지가 낮은 사람 등 사회가 정해놓은 일정한 규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고령 노인에 속하지 않지만 퇴직한 후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첫 번째 직장을 구할 수 없는 흑인 또는 라틴아메리카인 청년들도 주변인에 속할 수 있다(Young, 2017). 김기운(2024)은 스포츠 공간에서 신체장애인의 억압적 경험을 탐색하며 장애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장애인스포츠시설의 물리적 접근 불가능성에 의해 지체장애인들이 주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여성에 대한 주변화의 경우 조직 내에서 다양한 정보 공유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남성 중심적 네트워킹으로부터 배제되는 등 외부집단화를 통해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권혜원 외, 2018). 교육 구조 속에서도 다양한 차이의 상황이나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표준화된 교육과정 프로세스가 소수 집단에 속하는 교육 주체들의 소외를 부추기는 등 주변화를 야기하고 있다(조현정, 2016).


근대 합리적 이성론의 토대로 세워진 정상성 중심 규범과 배제의 철학적 기반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주변화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현대 철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자 18세기 독일 철학자인 칸트(1724–1804)는 인간 인식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자 이성의 역할, 감각, 그리고 경험의 한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는 인간 이성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경험만을 절대시해 이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칸트는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흄의 경험론을 종합해 인식의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철학사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켰다. 그는 경험이라는 ‘질료’와 선험적 이성이라는 ‘형식’이 결합된 틀을 통해 인간이 세상을 인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칸트는 이성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 특징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도덕성과 자율성 역시 이성의 능력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이성이 없는 존재는 자율적 도덕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도덕법칙에 따라 스스로를 규율하는 존재로서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성’은 인간됨의 기준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반하는 것은 종종 '비이성적', 더 나아가 '비인간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근대 이후 교육, 복지, 법 제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개인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근대 철학이 설정한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주체’ 개념은 특정한 인간상을 전제하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들은 제도적으로 주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은 기존 제도적 기준에서 이성과 자율성의 측면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거나 이해되기 어려운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이동석 외, 2023). 그 결과, 발달장애인의 경험, 표현, 관계 맺음은 종종 불완전하거나 미성숙한 것으로 해석되며, 제도적 장치나 사회적 실천 속에서 그들의 주체성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이는 발달장애인의 삶과 표현이 주요한 사회적 참여의 장에서 배제되거나, 그 생산물들이 비가시화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주변화

일반 학생들, 소위말하는 정상성의 지능지수 범주와 사회성에 속한 이들에게 맞춰진 교육과정과 제도는 발달장애인들을 주변화로 이끈다. 공식적으로 입학은 허용하였지만 학교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과정과 시스템을 구축해놓았기에 이러한 구조 흐름과 방향에 맞게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학습에 대한 개별 속도, 학습자의 현재 수준, 학습의 개별 목표 설정, 수요자중심의 과목 개설, 수업의 인원수 등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수업이 진행되기에 학교 수업에서 점차 밀려나게 된다. 더불어 다른 또래들에 비해 본인의 능력이 모자라고 열등하다는 인식은 스스로를 주변화하게 만든다. 이러한 대안으로 정부는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을 만들어 발달장애인들을 따로 모아 이들의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만들었지만, 그 맥락을 면밀히 살펴보면 일반학교의 정상성에 속한 학생들 및 학부모들의 민원 호소, 그리고 이렇게 차별과 멸시를 부추기게 만드는 학교의 방관, 능력주의 기반의 교육 구조와 정책, 통합이 아닌 사회적 배제를 초래하기에 대안방책에 큰 모순이 포착된다.


노동에서 발달장애인의 주변화

노동활동에 있어서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대하여 잉여노동을 통해 이윤을 남겨야하는 비장애인 자본가 입장에서는 상황에 대한 파악능력 부족, 손과 눈의 협응력의 부족, 일처리의 느린 속도, 전문성의 한계, 업무를 위한 사회적 의사소통과 협력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발달장애인을 노동자의 자격에서 애시당초 배제시킨다. 이러한 주변화의 결과로 인해 유용한 사회생활 참여에서 추방되고 심각한 물질적 궁핍에, 심지어는 절멸에 몰리게 된다. 이처럼 이성을 작동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낙인은 결국 사회에서 배제되고 지도의 대상으로 만들며, 지도의 대상이 된다는 것 또한 이성적으로 행동하거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백종현, 2004).


아동의 주변화

그 밖에도 아동의 경우 주변화를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주변화를 경험하게 된다(신동인, 2022). 왜 아동들은 주변화되고 있는 것일까? 성인을 정상적, 보편적 인간으로 간주하고, 아동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각, 마치 성인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자연스럽게 아동의 관점, 판단, 욕구, 감정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한다. 이는 아동을 위한 정책과 법률을 제도화 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아동의 목소리를 수렴하지 않고 공급자 관점으로 현장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아동을 주체적으로 보는 시선의 결여, 보호의 대상, 사회적 관계에 참여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타자화의 매커니즘은 지금도 어느 도처에서 계속 생산되고 있다.


탈북학생의 주변화

탈북학생의 경우도 상당수가 현재 한국에서 주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김지수, 2019). 한국의 학교에서 상식으로 간주되는 언어, 문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 부족, 즉 한국의 교육제도와 사회문화적 규범은 탈북학생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위계로 작용하며 탈북학생들을 '결핍된 존재'로 낙인찍는 것과 더불어 북한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무용화한다. 학습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탈북학생들을 보는 동료 학습자 또는 관찰자들의 시선은 학습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평가절하와 노력부족이라는 편견 또한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당사자들은 본인들의 과거와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감추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배제와 소외를 더더욱 부추기며 개인의 무기력과 누적된 학습 실패로 스스로를 내재화시킨다.


마치며

우리는 주변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제도, 담론, 일상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중심 질서로부터 밀려나는지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이는 단지 공간적 배치나 상징적 위치에 국한되지 않으며, 권력, 규범, 인식, 관계가 교차적으로 작동하여 특정 집단의 존재를 가시화하지 않거나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복합적인 사회적 과정임을 의미한다. 주변화는 교육, 복지, 종교, 가족 등 다양한 사회영역에서 작동하며, 그 방식 역시 물리적 배제뿐 아니라, 정체성의 축소, 의사결정 권한의 박탈, 존재에 대한 침묵의 강요 등 다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의 속성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와 권력관계 속에서 생산되는 제도적 배제의 결과이다.

잠시 시좌를 옮겨서 거리를 두고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구조의 바운더리를 바라보자.

가장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주체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이들을 내몰고 있는 주변화는 과연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작은 응시와 작은 행동에서부터 그 변화는 시작된다.

주변인이 아닌 주변화의 현상을 절멸시키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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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조문순 (2023). 근대 합리적 이성론은 어떻게 발달장애인을 우리 사회에서 주변화시켰는가?. 한국장애학, 8(2), 13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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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cker, M. (1990). Out There: Marginalization and Contemporary Cultures. Cambridge, Mass: MIT Press.

Young, I. M. (2017). 차이의 정치와 정의 (김도균, 조국 역). 모티브북 (원출판연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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