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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문화와 장애, 문화생산적 저항의 외침

부르디외 문화자본과 행위주체로서의 장애문화운동

by 허무는사람들


쇼미더머니 12 (출처: Mnet)


2025년에도 국내 힙합씬에서는 많은 소식이 있었다. 2025 한국힙합어워즈에서는 올해의 아티스트로 래퍼 식케이가 수상을 하였고, 올해의 힙합 트랙으로는 고등래퍼 우승자인 김하온이 수상을 하였다. 국내 최장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쇼미더머니'는 약 2년간의 공백기 끝에 시즌12로 다시 돌아왔으며, 현재 세계적인 힙합 아이콘이라고도 불리는 래퍼 '트래비스 스캇'이 내한하여 첫 단독 공연을 진행하였다. 그 밖에도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로 거론되었던 '율음', '앰비드잭', '노선' 등 힙합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래퍼들의 활동 소식들이 주목되었다.

Rapdogg의 첫 앨범 '뉴 비긴즈' 표지

이번엔 세상이 주목하지 않았던 올해의 소식들도 전해보고 싶다. 오랜 시간 별의친구들에서 랩을 배우며 활동해왔던 박윤수(랩네임: 랩독) 래퍼가 공식 음원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앨범 'New Beginz'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내용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박윤수 래퍼의 공식적인 첫 음원발표라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보디빌더로 활동해왔던 래퍼 남상욱(랩네임: 우기)씨도 '포기하지마'라는 첫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 두 명의 래퍼들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한 명의 래퍼로 인정받기 전에 사회가 규정한 '발달장애'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져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고자 고군분투했던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힙합 문화에서 랩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먼저 힙합 문화의 역사적 배경부터 들여다 보자.


사회적 억압과 배제로부터 출발한 흑인들의 힙합 문화

미국 흑인들의 음악으로 불리는 힙합은 1970년대 뉴욕의 가장 가난한 동네인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탄생했다. 1959년 뉴욕 시장이었던 로버트 모지스가 고속도로를 완공하는 정책을 펴면서 브롱크스에는 빈민층만 남게 되었는데, 사회 안전망이 사라지자 마약과 범죄가 들끓게 되었고 이러한 배경으로 게토에서 등장한 것이 힙합이다(양효실, 2015). 힙합은 그래피티, 비보잉, 디제잉, 랩 등 흔히 4가지로 구성된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흑인들은 '그래피티'를 통해 길거리와 지하철 벽을 캔버스 삼아 자신들의 삶을 기록하며 절망과 분노를 표현해냈고, 가난과 인종차별로 인한 억압적 삶 속에서 자라난 흑인들은 물리적 폭력이 아닌 신체를 활용한 예술적 표현을 통해 춤으로 경쟁하는 '비보잉' 문화를 만들었다. 백인들과 달리 자신의 곡을 작곡하고 연주하지 못하는 가난한 처지에 있던 흑인들이 타인의 음악을 수집하고 LP를 돌리면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디제잉' 문화도 생겼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삶을 멜로디로 고발해내고자 흑인들은 '랩'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퍼블릭 에너미'라는 흑인 그룹은 흑인들의 분노와 고통을 치료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랩을 무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힙합이라는 문화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배제되었던 흑인들의 삶의 숨결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힙합문화와 장애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힙합 문화는 어떤 의미일까? 일단 장애인에게 있어 문화는 늘 생산주체보다도 소비자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그리고 힙합 문화와 같이 비교적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장르의 경우는 문화가 안착되지 못했기에 향유할 수 있는 경험적 기회에서도 늘 배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이라는 문화도 비장애인들의 권력 구조 안에서 작동하며 장애인들이 문화생산자로 위치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지닌 인지적 특성의 다름은 비장애인 중심의 힙합 문화 중 랩이라는 분야에서 특히 취약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아티스트가 랩을 한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내뱉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언어적 구사와 문학적 표현이 전제되는 '가사쓰기' 생산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이들은 취약성의 구조로 접속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박윤수 래퍼와 남상욱 래퍼가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대중에게 발화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음악적 성취를 넘어선다. 이는 인지적 취약성을 극복한 장애 래퍼들의 영웅서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자본의 분포가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배제되고 억압되어 형성되어 왔던 장애인의 아비투스에 대한 반증이자 균열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부르디외는 생산 수단의 소유에 따른 사회계급의 형성을 강조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권력 관계가 단순히 경제적 요소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본을 사회(적)자본, 경제(적)자본, 문화(적)자본 등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해서 바라보았다. 그 중 주목할만한 개념이 바로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은 비물질적 자원으로서 주로 가정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또한 개인이 사회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데, 같은 경제적 자원을 가진 두 가족이 있을 때 부모가 높은 문화 자본(예를 들어, 독서)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자녀는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을 또 다시 객관화된 문화자본, 제도화된 문화자본, 아비투스적 문화자본 등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객관화된(구체화된) 문화자본의 경우 책과 미술작품처럼 개인이 소유가능한 특정 문화적 자산을 일컫는다. 둘째, 제도화된 문화자본의 경우 학위, 자격증과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적 자산을 일컫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아비투스적 문화자본은 지식, 기술, 언어, 예술감수성, 습관 등을 일컫는다.


장애인의 아비투스적 문화자본과 힙합 장(field)


아비투스란 사회적 환경에서 형성한 인식, 행동 취향 체계를 일컫는다. 즉, 개인의 취향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이는 습관과도 유사하다. 어렸을 적 한국의 소도시에서 성장한 자녀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유년시절을 보낸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 다른 행동양식과 취향을 보이는 것처럼 각기 다른 아비투스를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아비투스 개념을 발달장애인에 적용해보자.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만나는 사람, 활동 반경, 경험의 스펙트럼, 교육방식 등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힙합이라는 장(field)을 바라볼 때 발달장애인은 예술 활동과 교육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주변화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홍대 거리, 공연장, 배틀 문화, 크루 중심의 네트워크와 같은 힙합의 주요 실천 공간들은 접근성과 사회적 관계망의 측면에서 발달장애인에게 낯설고 멀게 구성되어 있다. 반면 복지관이나 학교에서 제공되는 예술 활동은 대개 창작과 표현보다는 치료와 재활의 논리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장애인의 아비투스에서 힙합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래퍼라는 문화생산자이자 직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발달장애인이 힙합 래퍼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이들이 내면화할 수 있는 아비투스의 조건이 이미 비장애중심적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발달장애 래퍼가 ‘해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이러한 사례가 희귀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희소성이 어떤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분배와 장애인의 주변화된 아비투스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에 있다.


박윤수(Rapdogg) 래퍼의 공연무대 장면



문화생산자 역할과 행위 주체로서의 장애문화운동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은 이제 향유나 소비, 참여를 넘어 존재의 방식과 사회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자율적 표현의 장이자, 권리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채민, 2025). 그런 의미에서 박윤수, 남상욱 래퍼가 힙합문화를 통해 외치는 목소리는 단순한 자기충족적 표현활동을 넘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권리 실현이기도 하며, 비장애 중심적 권력의 삼투압을 교란하고 재구성하는 저항의 행위이자 동시에 그러한 변화를 실증하는 문화적 생산활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있어 차별과 제약 없이 동등한 창조자이자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문화운동의 흐름은 힙합 문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힙합 씬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중심부의 제도, 플랫폼, 기획자, 그리고 주요 주체들 역시 이러한 변화에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ㅡ Unfinished Epilogue ㅡ


힙합이 재생산하고 있는 장애혐오 표현의 문제


힙합 문화의 생산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담론을 떠나 장애재현 영역으로 시야를 돌려보겠다. 힙합문화에서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장애혐오를 포함한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비하 표현과 같은 문제다.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한국 힙합의 중심으로 일컫고 있는 대표 아티스트, 사이먼 도미닉은 몇 년 전 에픽하이가 발매한 정규 9집에서 피처링을 맡았었는데, 거기서 "틈만나면 한 눈 팔아. 나는 5급 장애죠"라는 가사를 표현으로 사용했다. 그 당시에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봐야할 곳을 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집중력 부족에 대한 자기비하적 표현과 문제적 행동을 시각장애의 등급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이들의 존재를 결함과 문제로 바라보는 것과 등치한다. 하나의 사례만 꼬집었지만 사실 최근까지도 래퍼들이 쓰는 가사에는 장애비하(바보, 병신, 덜떨어진놈 등) 뿐만 아니라 여성혐오(쉽게주는여자, 걸레년 등 주로 성적대상화 표현), 인종차별적 발언 등 사회적 소수자를 모욕하는 차별적 용어들이 즐비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소수자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언어로 담아내고, 저항의 목소리는 사회를 향해야


힙합은 인종차별과 빈곤이 교차하는 권력 구조 속에서 사회적 소수자로 위치해있던 흑인들의 일상과 저항에서 태동한 문화이다. 이후 힙합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고, 인종과 계급의 불평등 역시 일정 부분 완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힙합의 역사적 뿌리와 정치성은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당시 사회적 소수자였던 흑인들이 힙합을 통해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회복하고 억압에 저항했듯이, 오늘날의 힙합 또한 권력에 의해 주변화되어 온 이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힙합 문화의 생산자들은 인종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피지배적 위치에 놓여 온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단지 상징적 소재나 표현의 도구로 소비하거나 대상화해서는 안 된다.


저항의 제스처는 약자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억압하고 배제해 온 사회구조와 문제적 권력을 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힙합이 태어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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